출근길 지하철에서 안대를 낀 채 잠을 자고 있는 남자.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잠을 자는 그의 안대에는 ‘강남역에서 내려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지하철이 강남역에 가까워지자 주변의 누군가가 그를 깨운다. 남자는 고마움의 표시로 안대에 넣어뒀던 버거킹 커피 쿠폰을 꺼내 전한다.
버거킹이 지난해 커피 메뉴를 선보이며 진행한 ‘아침은 왕처럼’ 캠페인 광고의 일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가장 적다는 사실에 착안해 기획된 이 캠페인 광고는 TV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통해 많은 이에게 알려졌다. 지난해 칸 국제 광고제 은상에 이어 최근에는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 온라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광고를 만든 이들은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의 ‘선(先)제안 팀’이다. 오형균(34) 황성필(36) 김지아 씨(29)는 자신의 팀을 “대한민국 유일무이 팀” “이단아” “별동부대” 같은 말로 설명했다. 보통 광고가 광고주의 요청으로 만들어지는 것과는 달리 이 팀은 이름 그대로, 먼저 광고를 기획하고 그에 걸맞은 광고주를 찾아가 제안한다.
“과거 미국 오렌지 농가가 판매 부진으로 고민하던 중 광고 기획자가 오렌지를 짜 마시는 캠페인을 제안했죠. 그게 선키스트 주스의 시작이 됐고요. 해법까지 제시하는 광고야말로 저희가 지향하는 거죠.”(오 씨)
선제안 팀은 지난해 1월 꾸려졌다. 이들의 광고는 물건을 파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 많다. 최근 서울시 친구명찰 캠페인이 대표적인 예. 학교 명찰에 신고 버튼을 내장해 자신이나 친구가 학교 폭력을 당할 때 버튼을 눌러 즉시 교사에게 알릴 수 있게 했다. 학년 초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명찰에는 ‘준서 친구 김민재’ 식으로 같은 반 친구의 이름을 함께 넣었다. 매 학년 초 평균 8.5건의 학교 폭력이 발생한 한 학교에서 올해 시범적으로 이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지금까지는 한 건의 폭력도 발생하지 않았다.
광고들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아트 디렉터인 오 씨와 황 씨로 구성됐던 팀에 카피라이터인 김 씨가 올 초 합류했다. 어려운 점도 있다. 구체화한 광고 아이디어는 70개 이상 되지만 아직 광고주를 못 찾았거나 보류 중인 게 많다. “진행하려던 통일 프로젝트가 얼마 전 북한 미사일 발사 때문에 잠정 연기됐어요.”(오 씨) “좋은 아이디어라도 10번 찾아가서 한 번 승낙받으면 성공이죠.”(김 씨)
광고주 없이도 팀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을 “팀의 생존”이라고 답한 이들은 어떤 광고를 꿈꿀까. “광고가 재미없는 이유는 조급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저희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왕이면 기업과 사회가 함께 만족하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할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황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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