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별별수저’ 전시실. 방짜유기 공예품과 수저를 이용한 조각 등 개별 작품은 흥미롭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벚꽃과 목련 구경 나들이 인파로 온 땅이 미어지는 시기다. 앞으로 열흘 내로 서울지하철 사당역 근처를 여유롭게 지날 일이 있다면 6번 출구 앞의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에 들러보자. 흐드러짐을 자제한 채 단아하고 소박하게 선 목련과 벚나무들이 이제 막 꽃잎을 벌리기 시작했다. 고풍스러운 앞뜰 벤치에 앉거나 건물 나무창틀 앞에 서서 응시하는 꽃그림자의 풍미가 각별한 공간이다.
5월 15일까지 ‘별별수저’전이 열리는 이 미술관 건물은 1905년 대한제국 때 벨기에 영사관으로 지어졌다.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2층 건물. 공간을 좌우 대칭으로 나눠 배치하고 외벽에는 유럽 양식을 따온 돌기둥을 붙였다. 소유권자인 우리은행이 2004년부터 서울시에 무상으로 빌려줘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총면적 1488m²의 아담한 규모지만 군더더기 없는 내부 공간이 풍성하다.
하지만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는 건물과 공간의 가치를 적잖이 깎아내린다. 미술관 측은 “일상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오래된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그릇과 수저 등 식기를 소재 삼은 이런저런 작품을 수저 공예품과 뒤섞어 요령 없이 흩뿌려 놓았을 뿐이다.
개별적으로는 흥미로운 주제와 얼개를 보여주는 작품이 적잖지만 ‘왜 함께 모여 있어야 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운 까닭에 혼란만 안긴다. 관람객의 시선과 발걸음이 어떻게 흐를지 고려하기는커녕, 옹색한 스티커로 인쇄해 바닥과 벽면에 붙인 작품설명 태그는 읽기조차 어렵다.
옛 공간을 재정비해 현대미술 작품을 세련되게 선보이는 전시는 유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안내를 맡은 직원들은 폐관 10분 전 예고 없이 전시실 조명을 끄더니 부산하게 퇴근 준비에 돌입했다. 명목만 그럴듯하게 포장해 들이민 전시만 채워 내기에는 여러모로 아까운 건물이다. ‘꽃구경’을 위해, 늦지 않게 들러보길 권한다. 직원들의 퇴장 재촉을 면하려면 시간도 넉넉히 잡는 편이 좋다. 02-598-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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