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비에 대해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스탕달은 “질척하고 고약하고 밉살스러운 비”라며 싫어했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그것이 식물에 좋다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라며 찬양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 책세상 제공
#1. 테스가 알렉 더버빌에게 짓밟힌 날, 숲 속을 에워싼 건 안개였다. 테스를 노리던 알렉은 ‘모든 것을 감추는 안개’를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숲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욕망을 채운다.(토머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
#2. 1790년 7월 14일, 바스티유 함락 1주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열린 축제에서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시민들은 의기소침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빗물에 흠뻑 젖은 병사와 시민들이 함께 춤추기 시작한 것. 악천후도 혁명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음을 증명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와 문학자, 지리학자 등 10명이 함께 쓴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뷰파인더 가운데 날씨를 선택했다.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가 인류의 역사와 예술 등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며 흥미로운 지적 여행으로 초대한다.
안개는 그 형태의 신비스러움으로 인해 예술가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에세이 ‘의향’에서 안개를 야수에 비유한다. 클로드 모네는 템스 강의 안개가 사물의 윤곽을 지우는 순간을 포착하려 애썼다. 모네는 “이 엄청나게 멋진 광경은 고작 5분간 지속될 뿐이오! 미칠 노릇이지!”라며 안타까워한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벌이 실패한 데 혹독한 추위가 한몫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빅토르 위고는 시 ‘속죄’에서 1812년 겨울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에서 눈을 맞으며 회군한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늘은 굵은 눈발로 소리 없이/이 거대한 군대를 위한 거대한 수의를 지었다.’
‘시민왕’을 자처한 루이 필리프 1세는 1831년 도열한 병사들이 비를 맞고 있자 망토를 쓰는 것을 거절하고 함께 비를 맞았다. 모든 프랑스인은 자연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가 적잖다. 햇빛은 기력을 소진시킨다는 생각에 오랜 기간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1787년 광합성 작용의 발견으로 햇빛이 생명의 원리를 조절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햇빛이 찬양의 대상으로 드라마틱하게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아이들이 햇볕을 쬐어 땀을 흘리며 자라야 단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맑은 날씨는 여행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돼 휴가 때 비가 오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우천 보험’까지 나올 정도였다.
괴테는 ‘기상 이론의 초안’을 펴낼 정도로 날씨에 관심이 많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로테와 짜릿한 춤을 출 때 ‘그녀와 함께 공중의 뇌우처럼 날아오르다니!’라며 환호한다.
항상 곁에 있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날씨라는 존재를 감성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제작비 때문에 풍성한 그림과 사진이 흑백으로 인쇄된 점은 다소 아쉽지만 보는 즐거움이 크게 반감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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