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에서 1930년대 만주를 떠도는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정우성 분)의 대사다. 독립투사로 각인된 만주 조선인들의 기존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이른바 ‘만주 웨스턴’ 장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에서 만주는 서양 같기도 하고, 동양 같기도 한 묘한 장소다.
일본과 러시아의 패권 경쟁은 만주를 다양한 ‘문화 용광로’로 이끌었다. 실제로 만주국은 한족과 만주족, 일본인, 조선인, 몽골인의 협력을 강조한 오족협화(五族協和)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다.
이 책은 냉전 이후 우리 기억 속에서 한동안 잊혔던 만주를 역사의 중심으로 불러내고 있다. 특히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근대화를 1930년대 만주의 사회 변화와 연결지어 해석한다. 일제 식민통치에서 경제발전의 요인을 찾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차별화된 접근법인 셈이다. 물론 이 시기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정부였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저자는 국가가 중심이 돼 강력하게 목표를 밀어붙이는 불도저식 정책이 만주국의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젊은 시절 만주국에서 활동한 박정희 등 군부 지도자들의 경험은 이후 한국 근대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만주의 인적 유산이 소수 엘리트에게만 한정되지는 않았다. 광복 무렵 만주와 일본에 살았던 조선인은 약 400만 명으로 당시 한반도 인구의 20%에 달했다. 특히 1930년대 부산에서는 매년 100만 명의 조선인들이 만주와 일본으로 향했다.
만주국의 경제 시스템도 한국의 중공업화 노선과 관련이 깊다. 일제가 만주에 세운 공업단지는 당시로선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소련이 2차 세계대전 직후 수만 명을 동원해 각종 생산, 발전 시설을 해체해 자국으로 옮길 정도였다. 만주 공업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화 노선에 공헌하기도 했다.
저자는 만주국과 근대화의 연관성을 설명하면서 편협한 민족주의 시각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식민 경험은 오로지 고난의 시기였던 것만이 아니라 훗날 식민 지배자를 능가할 모방, 차용, 변형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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