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계 게릴라들이 등장했다. 20, 30대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등 ‘12명+알파(α)’로 구성된 ‘읻다 프로젝트’가 2년간 작업해 문학성이 짙은(한편으로 팔릴지는 의문스러운) 책 3권을 최근 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쓴 세 권의 일기를 묶은 ‘전쟁일기’, 루이페르디낭 셀린이 스스로를 인터뷰해 쓴 소설 ‘Y교수와의 대담’, 일본 시인 미즈노 루리코가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회상한 ‘헨젤과 그레텔의 섬’이다. 》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5일 저녁 6명의 게릴라가 모였다. 낭독회,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은 출판사 직원, 어학 강사 등 생업이 있다.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투자해 책을 만든 건 상업성만 추구하는 출판계에서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러시아 소설을 내고 싶어 제안을 해도 번번이 물을 먹었어요. 안 팔린다는 거죠.”(다다 씨·예명)
“이름 있는 작가들하고만 작업해요. 그게 안전하니까요. 실험해 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여지가 아예 없어요.”(김잔섭 씨·예명)
판매 부수와 유명 작가에 대한 섭외력에 따라 편집자의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에 숨이 막혔다는 이도 있었다. 한 대형 출판사 면접에서는 면전에서 탈락 통지를 받았단다. 편집을 시킨 후 곧바로 채점한 뒤 “당신은 B마이너스다. 우리 회사는 B플러스 이상만 올 수 있다”고 통보한 것. 오랜 시간이 걸려도 책을 잘 만드는 사람보다는 단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을 원하는 게 한국 출판계의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번역자는 디자인 등에 대해 어떤 의견도 낼 수 없는 구조 역시 답답했다.
“책이 나온 후 표지나 장정이 별로면 힘들게 번역했던 숱한 날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요.”(정수윤 씨)
이들은 작업 과정에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다. 전원합의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세 권을 만드는 데 모두 600만 원가량 들었다.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서로에게 자료를 보낼 땐 퀵서비스 대신 대중교통을 타고 직접 전해주는 방식으로 한 푼이라도 비용을 줄였다. 클라우드 펀딩으로 1500만 원을 모았고, 게릴라들의 갹출로 2000만 원을 따로 마련했다.
“순수하게 책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내가 이 책의 주인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김보미 씨)
박술 씨는 “책을 보니 꿈만 같았어요!”라고 외쳤다. 책은 좀 팔릴까.
“초판을 각각 1000권씩 찍었는데 ‘전쟁일기’는 출간 일주일 만에 추가로 1000권을 더 찍게 됐어요.”(최성웅 씨)
각각 700권씩만 팔리면 제작비는 건진다고 한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 릴케의 ‘두이노 비가’ 등 7권을 더 출간해 모두 10권을 내는 게 1차 목표다.
“인문·철학책을 누가 사보냐고들 하지요. 밤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희미한 불빛 아래서 인문학 책을 읽고 계시더라고요. 그런 분이 대한민국에 1000명은 계시지 않을까요? 그러면 가능한 작업이라고 믿어요.”(최성웅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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