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국에서 민국으로’라는 전시회를 둘러봤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7주년 기념사진전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기미년 독립선언서와 백범의 부인 최준례 여사의 묘비 사진이었다. 독립선언서가 새삼스러운 것은 공약삼장 첫머리의 정의, 인도, 생존, 번영 등의 단어 때문이었다. 일제에 대한 투쟁이 급박한 마당에 ‘배타적 감정’을 경계하고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 것이 3·1운동의 정신이었음을 깨달았다.
또 최 여사의 묘비는 ‘ㄹㄴㄴㄴ해 ㄷ달 ㅊㅈ날 남, 대한민국 ㅂ해 ㄱ달 ㄱ날 죽음’이라고 순한글로 적혀 있었다. ‘4222년 3월 19일 출생, 대한민국 6년 1월 1일 사망’이라는 뜻이다. 독자 연호를 사용하고, 아라비아 숫자마저 한글로 표기해 모든 분야에서 독립을 이루려 했던 임정 인사들의 철저한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전시회의 끝부분은 2019년이 3·1운동과 임정 수립의 100주년임을 알리며 그 기념조형물과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제안이었다. 10진법 세상에서 100주년은 가장 크게 기념해야 할 시점이다. 기억과 망각의 경계선이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에 에펠탑이, 미국 독립 100주년에 자유의 여신상이 건립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제 3·1운동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새로운 개념의 기념물이 서야 한다. 기념의 대상은 그 사건의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의 사상과 이상이다. 이승만, 김구, 이동녕, 윤봉길 등의 활동과 사상을 부활시켜 온전한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 임시정부기념관을 세워 그 안에서 부활한 그들을 만나게 하자. 임시정부는 중국 대륙을 떠돈 ‘길 위의 정부’였다. 상하이에서 시작해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을 거쳐 충칭에 정착해 광복을 맞았다. 27년간 고난의 3만 리 여정을 기억 속에서 되살리자. 기념관 안에 여러 임정 청사들을 재현하고 거기서 그들의 치열한 정신과 고통스러운 생활을 만난다면 우리는 입체적인 기억과 현재적인 기념에 성공할 것이다. 100주년에 가치 있는 3·1운동 기념물과 임시정부기념관이 세워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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