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영화에서는 종종 혈기 넘치는 젊은 무술인이 주름지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넘어뜨리지 못해 당황하는 장면이 나오고는 한다. 젊은이는 땀을 뻘뻘 흘릴 뿐 자신보다 힘이 약해 보이는 노인을 쉽게 제압하지 못한다. 어찌 된 일일까.
이런 질문을 받자 이찬 사단법인 대한태극권협회 명예회장(61)은 자신의 손목을 내밀며 말했다. “한번 밀어 보시지요.”
그의 손목에 손을 대고 밀어내려 하자 그가 그 속도에 맞추어 자신의 손목을 쓱 뒤로 뺐다. 태극권 고수의 손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허공만을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의 손목에 아무런 힘도 가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간단히 설명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힘쓸 곳이 없게 하는 것이지요.”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 상대방의 주먹도 그에 맞서거나 맞아 주는 대상이 있어야 파괴력을 발휘한다. 천하장사가 벽을 밀더라도 벽이 그 미는 만큼 뒤로 물러난다면 천하장사의 힘은 허공에 머물 뿐 벽에 미치지 못한다.
힘이 넘치는 젊은 무술인이 노인을 넘어뜨리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영화 속의 장면은 젊은이가 힘과 주먹을 쓰려고 하는 방향과 속도에 맞추어 몸을 젖히거나 물러서면서 노인이 그 젊은이의 힘과 주먹을 받아 주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스승인 국홍빈 선생과 처음 마주했을 때 젊고 패기만만했던 무술인이었던 자신이 그분을 제대로 밀어내지 못했던 순간을 자신의 글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스승을 밀어내려고 하면 마치 허공 중의 수건을 미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오랜 시간 태극권을 수련해 온 이 회장은 이렇게 ‘덜어냄’과 ‘맞서지 않음’으로 상대방의 힘을 무력화하는 이치를 설명했다. 그가 수련해 온 태극권은 부드러움과 온유함으로 강함과 거침을 상대하고자 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위협과 모욕에 맞서는 마음의 자세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국내에 태극권을 본격적으로 보급한 사람이다. 태극권은 중국 송나라 말 장삼봉이 창안한 무예로 청나라 때 양(楊)씨 가문을 통해 궁중의 호위무사들에게 전수되다가 청나라 몰락 이후 일반인들에게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이 이른 아침 곳곳에 모여서 천천히 체조하듯 수련하는 것이 바로 태극권이다. 영어권에서는 타이치(Taichi)라고 한다. 이 회장의 저서에 따르면 태극권은 부드러운 동작 위주의 양식(楊式), 강한 동작 위주의 진식(陳式)이 있고 양식과 진식에서 파생된 오식(吳式) 무식(武式) 손식(孫式) 등이 있다.
이 회장은 양식 태극권을 개량한 정자(鄭子) 태극권을 수련했고 몸이 허약한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치유태극권(테라피 타이치)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태극권의 목적을 “부드러움에 이르는 데 있다”라고 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고요함으로 격렬함을 누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친절하게 웃으며 태극권의 유래를 설명해 준 이 회장이지만 거친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경기 양평군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10세 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동네 이장이 인근 군부대 태권도 교관에게 마을 청소년들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 계기였다. 마을회관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그러다 18세 때 중국 무술로 전향했다. 소림권 당랑권 등을 익혔다. 젊은 시절 사소한 이유로 싸움도 많이 했고 ‘누가 시비 좀 안 걸어 주나’ 하고 바라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배운 것을 실전에서 활용해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고 했다.
극장과 영화사에서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는 영화 개봉관이 몇 개 없었어요. 영화가 개봉되면 사람들이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섰지요. 암표 장수들이 극성이었어요. ‘외팔이와 맹협’이라는 무협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암표 장수는 3개월 동안 암표를 팔아 집을 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죠.”
그는 극장에서 이런 암표 장수들을 단속하고 공짜로 극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도 막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영화사 제작부장도 했다고 한다. 지방에 촬영을 가면 지역 건달들이 시비를 걸곤 했는데 이를 막아 주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아는 형’들이 나이트클럽 이권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질 듯하니 좀 와서 도와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거칠게 지내던 그는 중국 무술 도장을 차렸다. 자신의 도장 인근에 다른 무술 도장이 생길 때면 찾아가서 실력 대결을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침 그가 찾아간 도장의 관장이 그에게서 중국 무술 심사를 받은 사람이어서 소주를 마시며 화해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고 했다. 동네 건달들이 도장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스님이 찾아와 대결을 청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몇 차례 신체 접촉을 해 보면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초반 몇 번의 동작을 취해 보고는 금방 승패를 인정했다고 했다. 당시의 자신에 대해 그는 “눈빛이 살벌했고 주변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고 했다. 무술 고수가 되기로 결심한 뒤 머리와 눈썹을 밀고 두문불출하기도 한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속의 각오와 결의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되지 꼭 삭발까지 했어야 하느냐는 겁니다. 하하. 젊은 혈기로 차 있던 때죠.”
이러한 모습의 그는 이후 변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 태극권을 수련하며 온화함과 여유로움을 추구하면서 생긴 변화였다고 그는 자평한다. 태극권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고 회고했다. “저에게 중국 무술을 가르쳐 준 한국인 스승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승님에게는 또 중국인 스승님이 계셨고요. 중국인 스승님이 한국인 스승님에게 기회가 되면 태극권을 배워 보라고 권하셨는데 인연이 닿지 않아 배우지 못하셨어요. 그 한국인 스승님이 저에게 본인은 태극권을 배우지 못했지만 저보고 기회가 있으면 배워 보라고 하셨어요. 스승님의 스승님으로부터 내려온 태극권 입문 권유였지요.”
처음에는 친구가 구입해 온 태극권 서적을 화교학교에 다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가며 독학으로 태극권을 익혔다. 그러던 중 1988년 대만으로 중국 무술 심판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태극권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대만의 태극권 고수인 국홍빈에게 본격적으로 태극권을 배웠다. 몇 개월씩 스승 댁에 머물며 태극권을 익히고 돌아와서는 다시 찾아가 배우는 등 스승이 3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배우고 익혔다고 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태극권을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에 전무하다시피 했던 국내 태극권 인구는 현재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평생 수련해 온 태극권의 특징에 대해 그는 ‘움직이는 선(禪)’과 같다고 설명했다. 태극권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수련하므로 이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관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게 된다는 것이다. 또 격렬하지 않고 부드러움과 온유함을 지향하기 때문에 성격도 차분해진다고 했다. 천천히 내장을 움직이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수련을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노년층에서도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는 태극권을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10년간 매일 기본 수련인 권가(拳架)를 10번씩 반복하고 잠들었다고 한다. 권가를 한 번 하는데 7∼8분이 걸린다. 국내에 생소한 무술을 보급하느라 초창기에는 생활고에도 시달렸다. 부인이 조그만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지금은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의 삶은 이렇듯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운동하면 깡패가 된다는 주위의 시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가족을 풍족하게 부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등에 힘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수십 년 동안 무도인의 길을 걸었다.
격투에 필요한 기술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무술(武術)’이 되고 신체의 아름다움을 펼치는 측면을 강조하면 ‘무예(武藝)’가 되며 신체의 건강을 바탕으로 정신적인 고양을 추구하는 측면을 강조하면 ‘무도(武道)’가 된다. 그는 “결국엔 다 같은 말이지만 태극권에는 무도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동양의 전통 무술 속에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하고자 하는 오랜 꿈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현대에 있어서 이러한 무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두뇌와 몸을 대신하려는 시대가 아닌가.
이에 대해 그는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을 거론하며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제가 볼 때 인공지능은 아직까지는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을 지니지 못했으므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그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아무리 편리함을 가져다주더라도 인간 스스로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고 칩시다. 맛있는 음식을 로봇이 직접 가져다준다고 하면 그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여 찾아가는 과정의 고단함을 모릅니다. 고단함이나 슬픔이 있어야 그 뒤의 편리함이나 기쁨을 더 잘 알게 되는 겁니다. 기쁨과 슬픔은 상대적입니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있는 겁니다. 편리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가 모든 것을 다 해 주어서 이 세상에 고단함은 없고 편리함만 있다고 하면 과연 편리할까요. 그때는 편리함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겁니다.”
그의 말이 이어질 때 서울 서초구 법원로에 있는 그의 도장에서는 초로의 여성들이 서서히 몸을 풀며 태극권을 익히고 있었다. 그는 그 수련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저렇게 수련하는 과정은 힘이 듭니다. 땀을 흘리는 거죠. 땀을 흘리며 태극권을 수련하면서 어느 경지에 오르게 되면 삼매경에 빠지며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이는 직접 자기 몸을 움직여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했을 때의 성취감, 고통을 극복한 뒤의 행복감, 직접 노력해서 얻은 것의 소중함 등과 맞닿아 있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편리함을 주더라도 인간이 ‘땀 흘리며 얻는 보람’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생 자체가 땀을 흘리며 많은 난관을 극복해 온 과정이었다.
또 기계가 아무리 편리함을 주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해 주더라도 건강 없는 수명 연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폴로 신에게 무한에 가깝도록 오랜 생명을 달라고 했던 무녀(巫女)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깜빡하고 무한한 젊음을 함께 부탁하는 것을 잊은 그 무녀는 영원히 늙어 가며 쪼그라들어 괴로워한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것이 이후 그녀의 소망이었다.
신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과 건강을 지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첨단 기계 문명 속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수련하는 노력은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또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한 계산을 대신해 준다 해도 인간의 정신을 높이는 것은 역시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렸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고자 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중요하다.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하는 무도는 그래서 계속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하는 것은 비단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武道)일 뿐만 아니라 보통의 인간들이 모두 추구해야 하는 ‘인간의 길’인 것처럼 들렸다. 고요한 도장에서 명상에 잠기듯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진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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