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기자의 談담]“K푸드, K스타일 장수하려면… 장인정신과 발효의 향 담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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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브랜드 콘셉트 개발 김아린 ‘비 마이 게스트’ 대표

12일 만난 김아린 ‘비 마이 게스트’ 대표는 “오래된 것에는 지금 디자인하려면 따라갈 수 없는 힘이 있다”며 “한국적인 것들의 매력을 해외에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2일 만난 김아린 ‘비 마이 게스트’ 대표는 “오래된 것에는 지금 디자인하려면 따라갈 수 없는 힘이 있다”며 “한국적인 것들의 매력을 해외에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김선미 기자
김선미 기자
《 누군가 외식업을 시작한다고 해보자. 매장 디자인, 식자재 구매, 타깃 소비자 설정….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럴 때 감각 있는 전문가가 조언해 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서른아홉 살 김아린 씨는 20대 후반부터 국내 식당들의 매장 콘셉트와
상품, 메뉴 등을 개발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 왔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생소한 ‘식음료(F&B) 컨설턴트’라는 직업이다. 그가 2004년 세운 ‘비 마이 게스트(BE MY GUEST)’라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는 그해 서울 강남의 한 신생 식당에서 뉴욕식 ‘아점(아침 겸 점심)’을 팔자는 컨설팅을 하면서 국내에 브런치 열풍을 몰고 왔다. 이 시대 여성들의 식료품 장보기를 고급스러운 소비행위로 탈바꿈시킨 신세계그룹의 SSG마켓(2012년)에서는 우리 농부들의 생산과정을 하나하나 이야기로 만들었다. 지난달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자주(JAJU) 테이블’은 ‘백화점에서 파는 가구와 식기를 체험하고 구입할 수 있는 식당’으로 콘셉트를 잡은 뒤 멋 내지 않고 제대로 된 볼로네세 파스타와 버거 등을 메뉴로 구성했다. 》

 
12년 전 브런치카페 대중화
 
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한 ‘비 마이 게스트’를 찾아갔을 때는 김 대표와 직원 넷이 봄 햇빛 좋은 테라스에서 막 점심식사를 마칠 무렵이었다. 그는 테라스에서 키우는 허브들을 가리키며 “얘들이 곧 정글처럼 우거져요. 요리에 넣어 먹기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날 메뉴는 아보카도, 구운 마늘과 오렌지, 비트, 직접 키운 허브 등을 넣은 샐러드와 파스타 그리고 화이트와인. 평소에도 그의 페이스북에서 이 회사의 직원 식사를 본 적이 있다. 꽃 모양 백색 사발 안에 담긴 라면 위에는 그가 기른 루콜라와 차이브 꽃이 듬뿍 얹혀 있었다. 자연친화적이면서 단아한 느낌. 요즘 잘나가는 ‘김아린 표’ 감각이다.

―‘회사 밥’이라기엔 너무 예쁘네요.

“회사라기보다는 스튜디오 규모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동료들이니 행복한 팀워크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종종 밥도 같이 해 먹어요. 평소 집중해 일하는 대신 빨간날(공휴일)은 무조건 쉬고 칼퇴근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는 일이 여전히 생소합니다.

“처음 시작했던 12년 전에는 정말 희귀했죠. 우연히 지인의 지인이 식당(‘텔 미 어바웃 잇’)을 차리면서 초기 방향을 잡을 사람을 필요로 했어요. 그때 함께 잡은 콘셉트가 브런치 카페예요. 지금은 거의 모든 국민이 브런치를 알지만 당시만 해도 일간지에서 브런치의 사전적 의미를 설명할 때였거든요.”

―그러다가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 일을 했네요.

“네. 그런데 저희는 건축가도 디자이너도 아니에요. 브랜드 탄생을 돕는 사람, 브랜드를 반짝이게 하는 사람이랄까요. 예전에 제주 오설록 티스톤(차 박물관)과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화장품숍과 카페를 겸한 공간)의 매장 구성과 메뉴를 컨설팅했던 걸 계기로 올해엔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 특성을 극대화한 대표 매장)의 서비스 구성도 맡게 됐어요. 기존 고객이 다시 일을 맡기거나, 저희 프로젝트를 본 새로운 고객이 일감을 맡겨요.”

그는 행여 남의 공(功)이 자신의 공으로 둔갑하면 안 된다며 ‘이 부분은 누가 했고, 이 부분은 내가 했다’는 식의 설명을 조목조목 했다. 그는 대전 성심당 케이크 부티크(2013년), 코엑스 메가박스 부티크 M시네마(2013년), 남양유업의 ‘1964 백미당’ 디저트카페(2014년), SPC그룹 ‘배스킨라빈스 31’의 프리미엄 버전(2014년) 등의 메뉴 개발에도 참여했다.

보자기포장, 제주의 자연을 상품화

그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이날 오전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더니 외국인 남녀가 1층 ‘헤리티지(heritage·유산) 룸’에 있는 옛날 경대와 한방화장품 재료 등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다가가 물어보니 프랑스 유명 화장품기업 로레알 본사에서 시장 조사를 온 임원들이었다. 재무담당이라는 프레데리크 씨는 “한국의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둘러본 소감을 말했다. 보고 들은 바를 김 대표에게 전하며 물었다.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한 일은 무엇인가요.

“아모레퍼시픽은 세계적 듀오 디자이너 ‘네리앤드후’를 건축가로 정한 후 그 안의 프로그램과 층별 세부 기획을 제게 의뢰했어요. 1층에 서점도 낼 수 있고, 숍도 낼 수 있지만 전 브랜드 전통을 강조하자고 했죠.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이미 충분한 내공이 있기에 오히려 저 같은 외부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 같아요.”

―‘지함보(智函褓·지혜를 담는 함과 보자기)’라는 이름의 보자기 포장이 품격 있었어요. 직접 작명도 했나요.

“네. 한국적 포장은 지나치게 멋 부리지 않으면서 모든 걸 다 감싸는 지혜를 갖고 있더라고요.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차(茶)는 박경미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만들고, 담는 다기(茶器)는 김선미 도예작가와 정소영 식기장과 함께 작업해 제작했어요.”

―메뉴나 서비스는 어떻게 개발합니까.

“제주 이니스프리 하우스를 예로 들어볼게요. 고객이 이니스프리라는 멋진 브랜드를 느끼려면 1초가 아니라 적어도 15분은 머물러야 하는데 카페가 그런 기능을 자연스럽게 하죠. ‘제주 것’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니까 감귤 빵 만드는 아저씨, 동백꽃을 줍는 아주머니처럼 제주 로컬과의 공생도 생각하고요. 깔끔하고 여성적이면서도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그래서 고객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을 전략적으로 녹여 나가다 보면 제주 감귤 주스와 유채꿀 오름 빙수 같은 이니스프리 하우스의 메뉴 방향이 정해집니다.”

―함께 일했던 회사 중 인상적인 곳이 있나요.

“10여 년 이 일을 하고 뒤돌아보니 철학이 뒷받침된 회사들을 우러러보게 돼요. 대전 성심당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이념 아래 빵 만드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가족처럼 움직여요. 신세계는 장방(醬房), 술방, 떡방이란 이름으로 ‘지금 이 순간 한국인이 먹는 장, 술, 떡’을 사명감으로 소개하고요. 바이어들이 좋은 콩을 사서 장 만드는 장인에게 전달해가며 메주의 품질 관리를 해줄 정도예요.”

브랜드, 사람처럼 오래가는 매력 있어야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랑스 문학자이자 번역가인 김화영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와 국내 1세대 설치작가 양주혜 씨의 1남 2녀 중 장녀로, 고 홍윤숙 원로시인의 손녀다. 부모의 프랑스 유학시절 태어나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온 뒤 프랑스로 가 요리와 컨설팅을 배웠다.

―어머니(홍익대 조소과 출신)를 따라 조소를 전공했나요.

“아니에요. 대학을 정할 당시에 아버지가 ‘조각이란 360도 입체를 보는 거라 의미 있다, 조소 전공이 의미가 있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했어요. 그 말에 성적에 맞춰 지원했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있을까요.

“부모님은 ‘난 불문학자, 난 그림 그리는 사람’ 이렇게 태어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화가 할까, 요리 할까’ 고민할 때 이해하기 어려우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공부를 하고, 어머니는 손가락에 관절염 왔다고 파스 붙여가면서 그림을 그려요. 깊이 있게 한 길을 걸어온 부모님의 무거운 엉덩이를 제가 배운 것 같긴 해요.”

바쁜 워킹맘인 그는 가족과 자주 여행을 하려 한다. 취향과 안목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만들어지는 ‘마음의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7세 아들의 그림들을 모아 두 차례 작은 전시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은 프랑스에서 사온 빈티지 스위치, 고급 향초와 책 등이 가득해 취향의 박물관 같다. 그런데 가장 눈길을 잡아끄는 건 테이블 위에 놓인 인주와 숯, 고무 지우개였다.

“60년간 가업(家業)을 이어온 매표화학은 우리 쑥을 달여 발효시킨 인주를 70대 할아버지가 손으로 일일이 용기에 담아요. 제주 해풍을 맞으며 오래 버틴 삼나무와 숯은 공기 정화에 좋고요. 2년 전 가까운 전문가들과 의기투합해 ‘낙낙’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우리 장수기업들의 제품을 큐레이팅해 상품화하고 있어요. 200개 한정으로 만들어 지인들 위주로 판매하는데, 언젠가 우리나라 면세점에서 팔아 한국의 미(美)를 알리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은 처음부터 묻고 싶었던 교과서적인 질문이었다.

―당신에게 브랜드란 어떤 의미인가요.

“브랜드는 사람과 같다고 생각해요. 보면 볼수록 끌리는 매력과 생명을 갖게 하는 것, 소비자에게 지불한 가격 이상의 판타지를 선사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해외를 다니면 유명한 과일 잼이나 기름 생산자가 많잖아요. 우리는 브랜딩 개념이 안 돼 있을 뿐이에요. 얼레빗은 머리카락에 정전기를 안 일으키면서 카드지갑에 쏙 들어가 얼마나 좋은데요. 우리 기업들이 점점 멋있어지는 요즘엔 한국 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스위스 바젤아트페어 때 백미당 아이스크림을 가져가 팔 수 있다면, 중국 상하이(上海)에 신세계 떡방이 생긴다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K푸드와 K스타일의 인기를 유지하려면 일단 한국 것들이 반짝이는 매력 덩어리가 돼야겠죠. 겸손한 가운데 트렌디하게 국내 역량 있는 브랜드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싶어요.”

아직도 남은 인주와 숯이 있는지 물어 사들고 그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것들을 선물할 고마운 얼굴들이 달 항아리처럼 떠올라 행복했다. 그가 말한 ‘한국 것들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브랜드#콘셉트#김아린#비 마이 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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