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한 수]‘미생’ ‘응팔’ 바람에 ‘이세돌 태풍’… 바둑, 이제 대세가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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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세대 가리지 않고 뜨거운 열기
“아직은 미미” 반신반의도 있지만…저변 확대 이어가기는 바둑계 과제

#1 지난해 5월 세종시로 이사를 가서 지역 바둑협회를 창립한 프로기사 김성룡 9단은 최근 뜻밖에 반가운 손님들을 맞았다.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 20여 명이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해 바둑을 배우겠다고 협회를 찾아온 것이다. 일주일에 1시간 30분 씩 수업을 받기로 한 이들은 김 9단의 바둑 강의에 매우 열심일 뿐 아니라 숙제도 잘 해온다.

#2 서울 사는 황민경 주부는 애지중지하던 열 살 외아들을 얼마 전 바둑학원에 등록시켰다. 그동안엔 영어 수학 등 주요 교과목의 학원에 보내느라 엄두를 못 냈는데 인간이 수천 대의 컴퓨터와 싸우는 이세돌-알파고 대결을 보고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1 대 4로 패했지만 역경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 등 그의 어록은 바둑 팬은 물론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4국에서 백 78이라는 전대미문의수를 던져 알파고를 무너뜨린 것에 대해 사람들은 ‘신의 한 수’라고 이름 붙였다. 이세돌-알파고의 대결은 한국 사회에 바둑 붐을 남겼다.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1 대 4로 패했지만 역경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 등 그의 어록은 바둑 팬은 물론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4국에서 백 78이라는 전대미문의수를 던져 알파고를 무너뜨린 것에 대해 사람들은 ‘신의 한 수’라고 이름 붙였다. 이세돌-알파고의 대결은 한국 사회에 바둑 붐을 남겼다. 한국기원 제공
5000년 동양 문화의 정수에서 두뇌 스포츠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바둑이 잇따라 불고 있는 훈풍에 제3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최근의 붐은 이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과거엔 조훈현 9단의 응씨배 우승, 조치훈 9단의 일본 바둑계 석권, 이창호 9단의 세계무대 평정 등 스타 기사들의 활약상에 기인한 것이었다면 요즘에 일고 있는 붐은 외적 요인이 크다.

2014년 가을, 동명의 인기 웹툰을 드라마로 제작한 ‘미생’이 시초였다. 원작 만화처럼 바둑이 주요 모티브로 설정되면서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도 ‘바둑이 도대체 뭔데?’라는 궁금증을 갖게 만들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메가톤급 바람을 몰고 왔다. 이웃 간의 살뜰한 정이 느껴지는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와 함께 전성기의 이창호 9단을 모델로 삼은 주인공 프로기사 최택(박보검 분)이 여러 차례 바둑을 두는 장면이 나왔다. 특히 최택과 여주인공인 덕선이 커플로 맺어지는 결말이 화제가 되면서 여성 시청자들 사이에 바둑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관심도 높아졌다.

이어 지난달에 열렸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정점을 찍었다. 일주일 동안 대국 상황이 연일 TV로 생중계되고 신문이 1면 톱으로 소식을 다루면서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만들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은 세계 2억8000만 명 이상이 어떤 시청 수단으로든 생중계를 보았다고 추산했다.

특히 이전까지 바둑을 흥미로운 게임 정도로 여겼다면 이세돌-알파고의 대결은 세계적인 정보통신(IT) 기업의 인공지능이 도전하는 첨단 분야라는 인식과 함께 위상이 높아졌다.

바둑을 모르던 주부들이 1024개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달린 알파고를 이야기하고, 4국에서 이세돌 9단의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78수가 ‘승착’이었다는 수다를 나눴다. 아이를 가르치거나 스스로 바둑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이 바둑학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동작프로기사바둑학원의 윤영민 지도사범은 최근 초등학교 고학년 원생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예전엔 잘 배우다가도 4학년이 되면 학업에 방해가 된다며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

성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서울 충무로 ‘꽃보다 바둑센터’에서 2년째 지도하고 있는 문도원 프로는 ‘응답하라 1988’ 때 수강생이 20%가량 늘었다고 전한다.

반면 서울에서 학원 세 곳을 운영 중인 곽민희 흑백바둑교실 원장은 최근의 붐이 학원 교육으로 바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반신반의한다. 바둑학원을 찾는 아이들은 보다 적극적인 부류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증가세는 미미하다는 것. 경제적으로 자립한 직장인들과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방과후학교나 문화센터 강좌에 집중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방과후학교의 바둑 강좌는 날개를 달았다. 4년째 출강하고 있는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의 유신환 강사는 “초등학교 1, 2학년들이 최택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면서 “한 강좌당 정원이 대개 40명인데 수강자가 넘쳐 추첨할 정도”라고 말한다.

바둑 경기는 이제 포털 사이트로 생중계되고 뉴스란을 장식한다. 바둑계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열기를 지속시키고 확산시키는 것은 한국 바둑계의 본산인 한국기원, 그리고 ‘바둑동네’의 역할이고 몫이다.

체육으로 분류되는 바둑은 지난해부터 소년체전 정식 종목이 됐고 올해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바둑 저변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바둑계는 보고 있다.

한창규 한게임바둑 컨텐츠팀장
#神의 한 수#이세돌#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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