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제비집으로 기어 올라가 새끼 제비를 잡아먹었다. 스님이 이를 보고 나머지 새끼들이라도 보호하려고 지팡이를 휘둘러 뱀을 멀리 쫓아버렸다. 살아남은 새끼는 두 마리였다. 이날 밤 어미 제비가 새끼를 품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이 급히 등불을 켜들고 나와서 보니 아까 그 뱀이 또 들어와 제비를 공격한 것이었다. 어미는 이미 죽었고 새끼 두 마리도 모두 죽어 있었다. 스님이 마침내 그 뱀을 때려 죽였다.
유의건(柳宜健·1687∼1760) 선생의 ‘화계집(花溪集)’에 실린 ‘보응설(報應說)’입니다. 평화로운 제비 둥지에 침입하여 새끼를 잡아먹고 마침내 어미까지 죽인 뱀이니 죽어 마땅합니다. 처음부터 뱀을 죽였으면 어미 제비와 새끼 두 마리라도 살았을 텐데 진작 죽이지 않은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정말 왜 그러셨을까요. 혹시 무슨 깊은 뜻이라도 있었던 건지. 제비는 새끼 때문에 뱀에게 죽었고 뱀은 제비 때문에 스님에게 죽었다. 이는 모두 전생(前生)에 쌓았던 원한의 빚이 있었기에 서로 그 빚을 갚은 것이다. 그러나 뱀이 받은 보복이 더욱 심한 것은 왜인가. 처음 새끼 제비를 잡아먹었을 때도 그 죄는 죽어 마땅하였다. 그렇지만 요행히도 스님이 너그럽게 용서하여 지팡이를 휘둘러 쫓아버린 것에서 그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맙게 여기고 욕심을 거두어 멀리 떠나야 마땅하거늘 다시 그 독수를 펼쳐서 돌아보거나 꺼리는 바가 없었으니 그 죄가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스님은 자비심으로 뱀을 대하였는데 뱀은 잡아먹으려는 탐욕으로 제비를 대하였으니 그 보복이 심한 것은 당연하다(僧以慈悲心待蛇, 蛇以殺貪心視燕, 宜其報之亟也).
우리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잘 모르니 이제 와서 그 죄까지 갚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잘못을 저질렀다면 한 번 용서받았을 때 깊이 반성하고 진정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의 팔뚝에 새겨진 ‘차카게 살자’는 문신이 그냥 장식용으로 새긴 것만은 아닐 줄로 믿습니다. 그분들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차카게’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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