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때로는 노래를 부르며, 허세를 떨면서 풀어나간다. 헤드윅의 인생 중 뭔가가 관객의 마음 속 어느 한 부분을 툭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다시는 꺼내보지 않으려 마음의 서랍 속에 넣고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두었던 아픔, 기억. 헤드윅 안에서 그것들과 조우하며 당황하고, 분노하고… 결국은 용서하게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최근 뮤지컬 마니아 A씨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30대 여성 직장인인 그는 뮤지컬, 그 중에서도 ‘헤드윅 마니아’였다. 2년 전 헤드윅을 봤다가 첫 눈에 홀딱 반해 뒤늦게 헤드윅 ‘회전문 관객’이 되었다고 했다. 원래 열혈 야구팬인데 이제는 야구장에서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꺼내 티켓상황을 체크할 정도가 되었단다.
공연계에는 A씨와 같은 헤드윅 마니아가 적지 않다. 성전환자의 파란만장한 인생 넋두리와 록 음악을 얽은 이 생소한 뮤지컬이 두터운 마니아층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A씨는 “뭔지 모를 먹먹함”이라고 했다.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보고 있으면 가슴 한 구석에서부터 먹먹함이 빵처럼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촉촉한 눈을 하고 웃는다.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번 시즌 헤드윅은 ‘뉴 메이크업(New Make Up)’이라는 사이드 네임을 갖고 있다. 실제로 헤드윅의 화장이 조금 달라지기도 했지만, 무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작은 사이즈의 소극장에서 공연되어 온 헤드윅은 이번에 드디어 대극장에 입성했다. 폐차장을 떠올리게 하는 황량한 무대세트, 크레인과 같은 대도구가 눈을 끄는가 하면 헤드윅이 사는(또는 살았던) 컨테이너 내부를 보여주기도 하고, 무대를 복층구조로 만들어 헤드윅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윤도현(사진)의 헤드윅과 제이민의 이츠학으로 ‘헤드윅 뉴 메이크업’을 관람했다. 이번 시즌의 헤드윅은 그야말로 초호화 기절초풍 캐스팅을 과시 중이다. 윤도현 외에도 조승우, 조정석이 헤드윅으로 돌아와 금색 가발을 썼다. 또 다른 헤드윅인 정문성과 변요한도 있다.
윤도현은 성대에 무리가 갔는지 쉰 소리로 대사를 했지만 과연 한국 록을 대표하는 록커답게 노래만 시작되었다 하면 황금색 드래곤이 되어 입으로 불을 뿜었다.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노련함도 여전했다. 헤드윅의 매력은 종종 배우가 캐릭터에서 스르륵 빠져나와 자신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관객은 헤드윅과 윤도현이라는, 다르면서도 동일한 인물에 빠져 3시간 가까이(커튼콜이 30분 이상이다) 열광하게 된다.
● 100명이 출연해도 100명이 다 다를 것 같은 헤드윅
한 배역에 3명 이상의 배우를 동시 캐스팅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헤드윅만큼은 예외다. 배우에 따라 완전히 다른 헤드윅을 보는 재미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같은 대사를 해도 전혀 다른 느낌이 난다. 노래도 다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음악을 반주하는 밴드(정식이름은 앵그리 인치)의 연주도 누가 헤드윅이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정도이다.
여기에 애드리브. 헤드윅은 배우의 애드리브가 풍성한 작품이다. 관객과 주거니 받거니, 밀고 당기는 애드리브의 맛이 ‘감칠감칠’ 하다. 당연히 배우마다 애드리브도 다르다. 조금 과장하자면 헤드윅은 100명이 한 시즌에 출연해도 100개의 다른 무대가 만들어질 것 같은 작품이다.
윤도현의 헤드윅을 보며 A씨가 말했던 ‘먹먹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헤드윅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때로는 노래를 부르며, 허세를 떨면서 풀어나간다. 헤드윅의 인생 중 뭔가가 관객의 마음 속 어느 한 부분을 무심한 척하면서 툭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다시는 꺼내보지 않으려 마음의 서랍 속에 넣고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두었던 아픔, 기억. 헤드윅 안에서 그것들과 조우하며 당황하고, 분노하고, 결국은 용서하게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헤드윅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반가웠고, 바뀌었지만 그대로인 헤드윅이 고마웠다. 기사를 쓰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져왔다. 헤드윅은 그런, 이상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