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사람들인 것만 같다. 물론 살아 있고 움직이는 존재 중에는 반려동물도, 비둘기도, 곤충도 있다. 그런데 사람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도시의 주인은 딱 셋이다. 사람, 영상, 자동차. 이 상태는 편리하지만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그 이유가 함민복 시인의 시에 잘 나와 있다.
시인은 단순하고 소박한 시를 쓴다. 어렵게 말하지도, 멋지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시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즉 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힘을 쏟지 않아도 되기에 깊게 읽힐 수 있고, 오래 기억될 수도 있다. 이런 시는 참 좋다.
어느 날 시인은 뱀을 보았고 그 뱀을 죽였다고 한다. 뱀은 무섭고 싫으니까 얼른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뱀을 죽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뱀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더 생각해보니, 내가 뱀을 무서워했던 것보다 뱀이 훨씬 더 많이 나를 무서워했을 것 같다. 결국 무서운 데다가 나쁜 존재는, 뱀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 생각이 확장되니 시인은 몹시 미안해졌다. 뱀만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지구의 생명체, 그뿐만 아니라 살아 있지 않은 것들도 사람이 무섭다. 손만 대면 캐가고, 쓰고, 없애고, 먹는 사람들이 참 많이 무섭다.
예전에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서양 사람들이 와서 땅을 팔라고 했을 때 인디언들은 그 제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공기와 대지와 시냇물과 햇빛을 우리가 소유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라고 대답했다. 함민복 시인의 시는 인디언의 지혜가 먼 나라 역사나 영화 속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누가 누구의 주인이고, 누구 하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로서로,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너무 함부로 하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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