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동화책을 집어 들곤 살짝 당혹해할지도 모른다. 그 여자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실비아 플라스다. 서른한 살 나이에 가스오븐에 머리를 묻고 자살한, 사후에 출간된 시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비운의 천재 말이다.
책에 실린 세 편의 동화는 플라스가 당시 영미 문단의 스타 테드 휴스와 결혼하고 3년이 지난 후인 1959년 지어졌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이 동화를 쓴 것으로 보인다. 동화가 나온 1년 후인 1960년 플라스는 첫딸 프리다를 낳았고, 1962년 아들 니컬러스를 낳았다.
동화는 사랑스럽다. ‘이 옷만 입을 거야’ 속 일곱 형제의 막내인 일곱 살 주인공 맥스 닉스는 정장 한 벌을 간절히 바란다. 마침 닉스가에 전달된 겨자색 정장이 아빠와 여섯 형들을 거쳐 맥스에게 전해진다. 아이의 기쁨이 경쾌한 운율감과 함께 느껴진다. 두 요정과 가전제품들의 이야기인 ‘체리 아줌마의 부엌’에서는 서로 남의 일을 부러워하는 가전제품들이 각자의 일을 바꿔본다. 와플을 만드는 다리미, 케이크를 굽는 세탁기 같은 설정이 깜찍하다. 마지막에 실린 ‘침대 이야기’는 하늘을 나는 침대, 북극 침대처럼 재미난 침대를 주제로 한 시다. 책 사이사이 들어간 데이비드 로버츠의 삽화도 귀엽다.
책을 읽다 보면 깊은 밤 침대 머리맡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동화를 읽어주었을지도 모를 ‘엄마’ 플라스가 그려진다. 누군가의 생소한 옛 사진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찌됐건, 아이가 있는 실비아 플라스의 팬에게 당장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정이현 씨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사랑하는 책이 한 권 생겼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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