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라 1982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후 많은 칼럼을 쓰고 ‘미래시민의 조건’ ‘서울의 재발견’ 등을 펴낸 저자는 자신만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본다. 그 중심에 한옥이 있다.
서울 북촌과 서촌의 한옥에서 모두 살아본 저자는 서촌에 강하게 끌렸다. 북촌에 비해 가치를 더디게 인정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규모가 더 작고 원형이 잘 보존된 데다 이웃 간의 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서촌지킴이를 자처하며 한옥마을을 유지하고자 애쓸 정도였다.
서촌에서 한옥을 사들여 ‘어락당’을 만드는 과정은 저자가 한옥에 매료된 이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집을 고치는 과정은 공개됐고 마을 사람들은 자주 와서 이를 구경한다. ‘어락당’이 완공된 날, 동네잔치를 벌인 것처럼 함께 모여 기뻐했다. 집이 완공된 후 오히려 허탈함을 느끼는 저자를 보노라면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결국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 간의 부대낌이 있고 살아온 자취가 간직된 곳, 오늘도 평범한 이들이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곳이 골목이 있는 한옥 마을이었다.
책은 미국인의 한옥 사랑가에 그치지 않는다. 88 서울 올림픽 후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독재 정치를 끝내려는 열망에 차 있던 한국의 현대사가 제3자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유교 사상이 강한 이유를 일제가 조선을 억압한 데 따른 반대급부로 해석하고 상업적인 대중문화를 국가 브랜드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우려하는 모습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현재 미국에 있는 그는 서촌에서의 두 번째 인생을 꿈꾸고 있다. 옛것에 매료된 이유를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을 준다. ‘주위에 오래된 것이 많고 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지금의 인생이 얼마나 짧으며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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