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내던 미국인 노부부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구경과 함께 며칠 동안 같이 다니면서 보여드리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에 적어 준비했다. 그중 재미있어 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정은 고전미술관, 조카 결혼식, 전통시장, 탄천공원 방문이었고, 내가 직접 함께 다니며 소개해 주었다.
공원에서 보낸 시간은 그 나름으로 즐거웠다. 한쪽에서 흥겹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재미있는 행사를 하나 가 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버스킹’이라 불리는 1인 공연을 하는 분이 이웃돕기 모금 활동 삼아 노래를 하고 있었다. 외국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는 친절하게도 신청곡을 받고 ‘Sweet Caroline’이라는 신나는 팝송을 불러 주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두 내외가 바로 일어나 손을 마주 잡고 흥겹게 춤을 추셨다. 고희가 지난 연세에 한 분은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아 행동이 부자유스러웠지만 너무나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벤치에 둘러앉아 구경하던 관객들 중 한두 분이 일어나 같이 합류할 것 같더니 쑥스러운 듯 슬며시 다시 앉았다. 감정 표현이 빠르고 자연스러운 미국인들과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한국인들이 갖는 문화 차이인가 싶었다. ‘남편이나 아이들과 서로 애정 표현을 자주 하며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도 했다. 가끔은 눈에 보이는 것이 마음속에 감춰져 있는 것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구나 싶었다.
장조카 결혼식에도 함께 갔다. 한국의 결혼식이 어떤지 보여주고 싶었다. 결혼식장 건너편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를 하던 중 꽃집 트럭에서 축하화환을 내리고 있었다. “무슨 꽃이냐”는 물음에 “각종 행사나 결혼식 때 축하하는 의미로 보내주는 화환”이라고 하니 아주 신기해했다. 미국에선 큰 사이즈의 화환보다는 대개 집 화병에 꽂아둘 수 있는 정도의 꽃다발을 많이 쓴단다.
3층 엘리베이터 문을 나서자 하객으로 가득한 로비가 나왔다. 또 하나의 경이로운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와∼, 이 사람들이 모두 결혼식을 축하해 주러 온 손님이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석한 결혼식을 처음 본다고 했다. “여러 커플이 같은 건물 내에서 결혼하는 날이라서 그렇다”는 설명에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자기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에 열심히 두리번거린다. 한복을 입은 시어머니랑 사진 여러 장도 찍고 신부대기실에 들어가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신부와 같이 사진도 찍었다. 조금 있다가 슬며시 오시더니 신부와 찍은 사진을 미국 가족에게 보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워낙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그 나름의 문화나 종교, 관습들을 따라 여러 형태의 결혼식이 있지만 한국에서 보낸 이번 봄 여행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몽골에서는 결혼식을 주로 늦여름이나 가을에 많이 한다. 5월이 다 되어가는 며칠 전에도 눈이 내린 사진을 받을 정도로 몽골의 4, 5월은 아직 추운 계절이다. 몽골의 4월은 한국의 늦겨울 정도 날씨라 결혼식은 따뜻한 여름이 와서 초원이 초록색으로 변한 이후 7월부터나 시작된다. 도시의 결혼식 모습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지만 울란바토르 시내에 결혼식장이 하나밖에 없어서 이른바 ‘손이 없는 좋은 날’에는 오전 4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결혼식이 이어진다. 결혼식장에서 식이 끝나면 바로 식당이나 별도로 준비한 곳에 가서 어른들 덕담을 듣는다. 그리고 식사와 함께 축하 공연, 친척과 친구들의 축하 노래, 선물 전달식 등 다양한 이벤트가 이어진다. 지방에서는 전통의상 차림으로, 그 지방의 격식에 맞게 전통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카자흐스탄 등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그들만의 특별한 결혼식이 열린다.
올해 만 스무 살이 된 아들이 여자친구와 식사를 한번 같이하자고 한다. 요즘은 ‘만난 지 1년도 안 된’ 아들 여자친구와도 밥을 같이 먹나 보다.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싶기도 하고. 이 아이가 더 커서 장래의 어느 날 예쁘고 참한 아가씨를 데리고 오면 4년 전 딸아이 결혼식에 이어 두 번째 결혼식을 치른다. 첫 번째는 한국식으로 치렀으니 둘째 아이 결혼식은 계획을 잘 세워 한국식, 미국식, 그리고 몽골식의 예쁜 부분만을 골라 ‘국제식’으로 치러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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