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부모의 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11>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몇 년 전 작곡을 의뢰받았습니다. 양희은 씨가 후배들에게 곡을 받아 부르는 프로젝트에 들어갈 곡이었죠. 이적, 윤종신 등 쟁쟁한 작곡가들이 참여한다더군요. 제 노래가 타이틀곡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의도나 대중을 위한 배려가 없는, 한심한 보통 사람에 대한 매우 사실적인 노래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거절이 두려워서 미리 신 포도로 만드는 자기방어적인 허세를 부린 것이죠.

영원히 청바지의 아이콘일 것 같던 양희은 씨도 결국 훅 나이가 드셨고, 경쾌하던 솔직함은 세월이 흐르며 깐깐한 평가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평가는 학생이나 평가 의뢰자에게는 필요하지만, 자녀에게 득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죠. 오히려 저항만 유발하곤 합니다.

그래서 실망스럽게 성장하고 있는 딸을 키우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딸의 저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게 된 엄마 말이죠. 그 엄마가 혼자 설거지를 하며 몰래 딸에게 하는 혼잣말을 노래로 만들기로 한 겁니다.

바보 같은 딸은 엄마의 부실함의 증거입니다. 엄마는 자신의 선의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부정하고 싶어 합니다. 불만족스러운 삶을 힘들게 버텨 왔으니까요. 내 아이에게는 나와는 다른,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헌신했으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엄마는 그제야 객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어떻게든 이 비극에서 벗어나야 하니까요. 아니면 결국 현실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그리고 아이들은 어떤 말들을 ‘실질적인 도움’으로 받아들일까? 답은 단순하다 못해 유치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고 나누는 애착이죠. 그 다음은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잘 살고 있고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린 기뻐집니다. 마지막으로는 즐겁게 노는 것입니다. 결국 저는 제 아이들에게 사랑, 유능감의 확인, 즐거움을 권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평가가 아닌 사랑과 칭찬과 즐거움을 환영하겠죠?

삶에 대한 부모의 조언은 자녀들에겐 변방의 북소리보다 못할 때가 많습니다. 분노는 논리를 파괴하니까요. 아이는 자라 부모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삶과 역사가 조잡하게 반복되는 싸구려 ‘후크송’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화가 나 있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려면 먼저 아이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눈을 맞춘 낮은 자세의 사과를 해야 하죠. 그리고 고통받은 아이의 울분을 함께 나눠야 합니다. 그렇게 악감정이 완화되어야 비로소 논리가 시작될 수 있죠.

오늘 이 노래 한번 들으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뮤직비디오의 양희경 씨 눈빛도 감상해 보세요.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희은#엄마가 딸에게#후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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