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호모부커스]출판기념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일 03시 00분


‘저작품에 대한 축하는 조선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전에도 불교통사(이능화, ‘조선불교통사’) 등 여러 축하할 만한 저작이 있었으나 당시엔 여러 사정이 있어 못하였다. 이번에 축하하게 된 것은 시대가 그만큼 변천된 것이라 하겠다.’(동아일보 1923년 1월 11일자)

1923년 1월 9일 서울 서대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안확(安廓·1886∼1946)의 ‘조선문명사’ 축하회 기사 일부다. 문단과 각계 유지들이 발기인이 되어 안확을 초청하고 환담한 20명 규모의 축하회, 남아 있는 기록으론 최초의 출판기념회다.

모든 출판기념회가 화기애애했던 건 아니다. 홍효민 소설 ‘인조반정’(1936년) 출판기념회는 광복 후 ‘효민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소공동 플라워 다방에서 열렸다. 시인 정지용이 술 취해 늦게 와서 시비를 걸었다. “효민의 밤은 또 뭐고 ‘인조반정’은 다 뭐냐.” 평론가 유동준이 정지용을 밖으로 끌어냈다. 우익 조선청년문학가협회 문인들이 행사를 주관했고 정지용은 좌익 조선문학가동맹에 속했다는 점이 시비의 단서다.

1970년 5월 29일 서울 무교동 경양식집 호수그릴에서는 이산 김광섭의 시집 ‘성북동 비둘기’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축사에 대한 작가의 답사가 큰 울림으로 남는다.

“1965년 4월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나는 어떻게 하면 살아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음 속에서 확인할까 해서 한 편 한 편 썼습니다. 짧은 인생을 영혼에 결부시키는 본질적인 표현이 바로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런 기교도 미학도 없고 다만 내 나름의 진선(眞善)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잘 어울려 살까 하여 시를 씁니다.”

지난달 19일 작고한 작가 신봉승은 한양대 영화과 시나리오 작법 강의 내용을 1966년 ‘시나리오의 기법’으로 펴냈다. 그는 ‘워낙 책 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친구들 강권에 밀려 무교동 호수그릴에서 출판기념회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영화평론가 이영일이 사회를 보고 작가 김동리, 배우 김승호가 축사를 했다. 1970년대까지도 많은 문예계 행사들이 호수그릴에서 열렸다.

요즘은 ‘워낙 책 내기 쉬운 시절이라’ 출판기념회도 흔한가 보다. 총선과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는 더 흔하다. 주최 측도 참석자도 부담스럽다. 지인들이 준비하여 축사, 답사, 식사가 이어지며 말 나누고 음식 나누는 20명 남짓 규모 축하 모임이 될 수는 없을까. 한 세기 전 안확의 저작 축하회가 그리운 까닭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출판기념회#저작 축하회#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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