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인상주의 미술가입니다. 도시의 삶을 다양한 인상 군상에 녹여 냈지요. 특히 머리를 바싹 묶고, 등을 훤히 드러낸 채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발레 수업’은 제1회 인상주의 단체전 출품작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수업 막바지의 부산함은 변함이 없군요. 무용수들은 2000석 규모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림 속 남성, 쥘 페로가 공연 리허설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미술가는 당대의 무용가이자 안무가와 가깝게 지냈어요. 유명 인사를 친구로 둔 덕을 화가는 단단히 보았습니다. 무용 연습실을 비롯해 시험장과 대기실을 드나들며 발레리나의 일상을 실감 나게 그려낼 수 있었지요.
19세기, 발레 무대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무대에 서고자 소녀들은 앞다투어 오디션 무대에 섰습니다. 훈련은 혹독했고, 부상도 잦았습니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했다고 끝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기량을 끊임없이 확인받고, 증명해야 했으니까요. 경제적 부담도 컸습니다. 무용수 지망생들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 많았거든요. 부르주아 남성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 대신 화가와 마찬가지로 무용수의 사적인 공간 출입이 자유로웠습니다. 후원자가 주관하는 만찬에 무용수를 불러내 춤추게 하기도 했지요. 궁핍한 소녀들에게 발레는 신분 상승의 도구였습니다. 화가의 그림 원경에는 중년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딸의 꿈을 응원하는 어머니들입니다.
화사한 봄의 교정에 잔잔한 연주곡이 흐릅니다. 경이로운 자연과 음악의 선율에 건조했던 공간은 스펙터클한 무대로 탈바꿈했습니다. 계절처럼 싱그러운 이십대들을 위한 봄날의 특별한 무대였습니다.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을 유지한 채 미끄러지듯 내딛는 걸음걸이와 여유롭게 움직이는 동작이 마치 현대무용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잠깐의 점심시간, 비로소 청춘들은 긴장의 무대에서 내려와 빛을 회복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춤추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네 삶을 위해 춤을 추는 소녀야/오직 그것만을 사랑하거라/네 가느다란 팔, 물결치듯 비틀거리지만/높이 도약하면서 네 몸의 균형을 잃지 말아라.’ 화가가 ‘어린 무용수’를 바라보며 시를 쓸 때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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