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표현에 차이가 있는데, 한국인들이 일본인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다는 것을 느낀다. 일본에는 ‘얼굴은 웃고 마음에서는 울고’라는 속담이 있다. 화가 나도 얼굴에는 나타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처음 만난 사람끼리 서로 소개할 때 면전에서 “잘생겼다”고 외모부터 평가하는 것도 내겐 놀라웠다. 어떤 사람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눈, 눈썹, 입 하나하나는 예쁜데…”라고 해줬는데 ‘이 말은 곧 안 예쁘다는 뜻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우리 남편도 마찬가지다. 바닥 난방이 안 돼 있는 일본은 겨울이면 실내 온도가 낮아 스웨터를 즐겨 입는다. 그래서 선물로 손수 만든 머플러나 장갑, 스웨터를 주곤 한다. 남편에게 스웨터를 처음 선물했을 때 남편의 표현은 암울했다. 선물을 본 순간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두 손에 선물을 들고는 인상을 쓰며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침묵의 시간이 3, 4분가량 흘렀다. 나는 속으로 ‘마음에 안 드나 봐’ 생각하며 너무 슬퍼 화장실에 가선 눈물을 흘렸다.
일본인이라면 아무리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도 상대의 기분을 생각해 기쁜 척한다. 나도 진짜 내 스타일이 아닌 물건을 일본인에게서 선물 받았을 때 “와∼, 들고 다니기 편하겠다” “생각해줘서 고맙네” 하고 말한다. 마음에 안 들었어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덕분에 상대와 기분 좋게 헤어진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가식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래도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진짜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뭐든지 말로 확인하는 문화가 있다. “화장실 빌려도 되느냐” 하는 식으로 ‘빌린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행동에 옮기기 전에 우선 한마디라도 말을 하고 한다. 일본인 유학생이 기숙사 공동 냉장고에 주스를 넣으면 다른 한국인 친구들이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마셔버리니까 자기 이름을 주스 병에 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내 것’과 ‘네 것’을 분명히 하고 규칙을 지키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한국에선 규칙보다 정을 나누는 것을 중요시한다.
나는 한국에 시집와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죄송하다”는 인사를 연발했다. 그런데 “한국에선 가족 간엔 마음이 통하니 미안하다, 고맙다는 인사는 안 해도 된다”라는 시아버지 말을 듣고 한국인의 깊은 정을 느꼈다.
한국에 거주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대인관계에서 솔직한 것이 편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일본인끼리 통화를 하면 결론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설명하느라 시간이 길어진다. 오해가 없도록 과정을 하나하나 말해야 상대가 순조롭게 받아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감정 표현을 말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의 포용력에 맡겨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말을 굳이 안 해도 내 마음을 알겠지’ 하는 암묵적 이해가 존재한다.
일본인들은 비즈니스로 거래를 할 때에도 확실하게 거절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검토해 보겠다”고 말하는데, 비즈니스 파트너들은 그 말이 ‘거절한다’는 뜻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아듣는다. 애매하게 표현했다는 사실에 불편해하기도 한다.
여담인데 그때 남편에게 줬던 스웨터는 속상해서 바로 내 친구에게 팔아버렸다. 한국에선 스웨터 선물이 반갑지 않았나 보다 하고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시누이가 남편에게 스웨터를 선물했을 때 남편은 엄청 고맙게 받고는 그걸 자주 입었다. 웬일인가 했더니 그것은 좋은 브랜드 상품이었다. 남편은 스웨터를 싫어했던 게 아니고 고급 옷을 선호했던 것이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뭐든 부드럽게 말을 골라서 하는 편이다. 배려를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속을 알 수 없다”는 말을 한국인에게 종종 듣곤 한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도 배려고, 마음이 상하지 않게 부드럽게 말하는 것도 배려다. 나와 타인 사이를 나쁘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한국 스타일과 일본 스타일을 가려서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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