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출간될 예정인 알랭 드 보통의 새 소설 제목을 앞두고 은행나무출판사에선 연일 토론이 한창이다. 제목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ourse of Love’.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다음 대사의 일부다. “The course of true love never did run smooth.”(진정한 사랑의 행로는 평탄치 않다.) 영국 작가인 보통에게 올해 400주기를 맞는 선배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의 의미는 남다르겠지만 국내 번역을 놓고는 고민이다. ‘사랑의 행로’가 보통의 그간의 인문학적 이미지를 살리는 데 적절한지 출판사 편집자들은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제목 장사’란 말이 있듯이 책도 제목이 중요하다. 독자가 제일 먼저 접하는 책의 정보이자 두고두고 불리는 이름이어서다. 작가가 제목을 정하기도 하지만 출판사에 제목을 일임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 주 출간되는 정유정 씨의 신작 소설 ‘종의 기원’은 작가가 아예 제목부터 짓고 쓴 작품이다. 간척지의 신도시 아파트를 배경으로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 때문이다. 줄거리에서 유추되듯 악(惡)의 탄생을 담았다는 점에서 제목과 내용이 맞춤하다. 정 씨의 전작들이 ‘7년의 밤’ ‘28’이어서 차기작도 숫자가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있었는데 빗나갔다.
내친 김에 뒷얘기 또 하나. ‘7년의 밤’의 처음 제목은 ‘해피 버스데이’였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자 사형수 아버지를 미워하던 주인공 소년이 종국엔 아버지와 화해하는 장면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해피 버스데이’가 폭력과 살인이 등장하는 소설 내용과 달리 밝은 느낌인지라 작가와 출판사는 논의를 거듭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간 뒤 주인공 소년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을 염두에 두고 ‘7년 만의 밤’이라고 해봤다가, 매끄럽지 않은 느낌에 ‘7년의 밤’으로 확정됐다. 이 제목의 책이 정유정 씨의 출세작이 됐음은 물론이다.
‘밤’에 관한 사연이 또 있다. 윤대녕 씨의 최근작 ‘피에로들의 집’도 연재 당시 ‘피에로들의 밤’이었다. 그러나 ‘밤’이라는 단어가 어둡고 상처가 많은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 작가는 이 단어를 바꿨다. 작품이 한집에서 가족처럼 정을 나누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을 살린 ‘피에로들의 집’이 제목이 됐다.
4만 부를 찍은 이기호 씨의 짧은 소설집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소설의 한 문장에서 따온 제목이다. 비정규직 주인공이 닥치는 대로 일하다가 배추 뽑기까지 하는 모습을 담은 ‘낮은 곳에 임하라’ 중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나도 눈높이를 좀 낮추고 취업하고 싶었다’는 대목에서 나왔다. 작가가 출판사에 제목을 맡겼고, 힘겨운 요즘 사회를 비춰야겠다는 생각에 출판사에서 지었다는 후문이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게 버텨야 하는 세상, 소설의 제목에도 이런 현실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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