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위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4일 03시 00분


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사옹원(司饔院)이 위어(葦魚)를 잡아 궁중으로 올리는데, 승정원 승지들은 자기들이 먹으려 졸곡제(卒哭祭) 전에 위어로 젓갈을 담갔습니다. 승지들이 이런 일을 했다니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승지들을 모두 갈아 치우소서.’

중종 10년(1515년) 윤4월 17일의 기록이다(‘조선왕조실록’). 얼핏 보기엔 사소한 일이다. 승지들이 사옹원이 관리하는 위어를 졸곡제 전에 구해서 썼다는 것이다.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는 그해 3월 2일, 스물다섯 살의 안타까운 나이로 죽었다. 졸곡제는, 항시 곡(哭)을 하는 일을 멈추는 시점의 제사다. 왕후의 졸곡제 이전에 승지들이 자신들의 먹을거리를 준비했음은 엄중한 잘못이다. 기사에는 ‘일곱 번 탄핵했으나 (중종이 승지들을) 갈아 치우지 않았다’고 했다. 장경왕후는 중종반정 공신 박원종의 조카다. 계비로 중전이 된 것은 궁궐 내 권력투쟁의 결과였다. 장경왕후 사망 후 폐비 신씨(단경왕후)의 복위 문제, 문정왕후 윤씨의 등장으로 조정은 한바탕 혼란을 겪는다. ‘승정원 위어 새치기’와 탄핵 상소는 그런 사건 중 하나였다.

이날 기록에는 도승지 손중돈을 비롯하여 승정원 승지 6명 전원이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업무 정지’를 청하는 내용도 있다. 관례를 따랐지만 졸곡제 전에 면포로 위어를 산 것은 잘못이니 사실 관계가 밝혀질 때까지 업무를 보지 않겠다는 ‘일시 사임’의 의사 표시였다. 중종은 ‘일시 사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어는 조기(석수어), 멸치(멸어), 북어, 청어, 밴댕이 등과 함께 세금으로 바치는 물고기로 임금님 진상품이었다. 고종 5년(1868년) 5월의 기록에는 ‘연이은 장마로 위어잡이 계절을 놓쳤다. 원래 바치기로 한 위어 1358마리 대신 소금에 절인 밴댕이 1358마리를 바치기로 한다’는 사옹원의 보고에 고종이 허락하는 내용도 있다.

조정에서는 다른 생선과는 달리 위어와 소어(蘇魚·밴댕이)의 공급을 위하여 사옹원 아래 위어소(葦魚所)와 소어소(蘇魚所)를 경기 서해안 일대에 두었다. 위어소는 행주산성 부근의 것이 가장 번창했다.

위어의 ‘위(葦)’는 갈대다. 위어는 갈대를 닮은 물고기 혹은 강의 갈대숲 아래 노는 물고기다.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제어(鮆魚)가 곧 위어’라고 했다. 위어는 ‘웅어’ ‘웅에’ 등으로도 부른다. 바다에서 살다가 양력 5월경부터 알을 낳기 위해 행주산성, 교하, 양천 부근으로 몰려온다. 한양도성 가까운 곳이니 궁중에서는 위어를 구해서 횟감 혹은 젓갈용으로 사용했다.

위어잡이는 쉽지 않았다. 위어를 잡는 일은 위어소 소속의 어민들이 맡았다. 이들에게는 병역과 각종 부역을 면제해주고 토지를 지급했다. 광해군 10년(1618년) 4월 ‘광해군일기’에는 임진왜란 후 위어소 어부들의 곤궁한 삶이 드러난다. ‘임진왜란 전에는 위어잡이 어부가 300호 정도 되었다. 이들은 위어를 잡는 대신 토지 8결(結)씩을 받고 다른 부역에는 동원되지 않았다. 임란 후 위어잡이 가구는 100호밖에 되지 않으며 이들이 받는 토지는 2결 정도다. 위어잡이 외에 땔감이나 집 짓는 재목감 부역에도 동원되니 힘들다. 다른 부역에는 동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광해군은 이 내용을 받아들인다.

궁중에서만 위어를 먹었던 것은 아니다. 전원생활을 한 옥담 이응희(1579∼1651)는 위어를 두고 ‘가는 꼬리는 은장도를 뽑은 듯하고/긴 허리는 옥척처럼 번득인다/칼로 저며 흰 서리 같은 회로 만들어도 좋고/석쇠에 놓고 구워도 좋다’고 했다(‘옥담사집’). 위어는 민간에서도 널리 먹었던 것이다.

겸재 정선(1676∼1759)은 1740년부터 5년간 양천현령을 지내며 한양 인근의 경치를 담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을 남겼다. 그중에 행주산성 부근 행호(幸湖)의 풍경과 위어잡이 배를 그린 ‘행호관어(杏湖觀漁)’가 있다. 이 그림에는 겸재의 오랜 벗 사천 이병연(1671∼1751)의 시가 붙어 있다. ‘늦봄의 복어 국이요/초여름의 위어 회라/복사꽃 넘실넘실 떠내려 오니/그물을 행호 밖으로 던진다.’ 지금도 5, 6월에는 김포, 강화 일대에서 위어를 만날 수 있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위어#중종#조선왕조실록#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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