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린 신승훈 1집, 김건모 2집,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 열광했다. 근데 서구에서는 몇 번째냐가 강조된 ‘1집’ ‘2집’ 대신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랄지 ‘Hunting High and Low’처럼 주제가 강조된 음반 제목을 많이 써온 것 같다. 그쪽 사람들도 ‘아무개의 세 번째 앨범을 젤 좋아한다’는 식의 말을 곧잘 쓰긴 하지만.
음악인의 농간 탓에 몇 집인지 유달리 더 헷갈리도록 만들어진 음반들이 있다. 며칠 전에도 두 장 나왔다.
첫째는 ‘Santana IV’. 노장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69)가 1960, 70년대 황금기 멤버들을 45년 만에 다시 모아 내놓은 신작이다. 4집 절대 아니다. 집으로 치면 23집인 이 작품에 ‘IV’가 붙은 건 ‘Santana III’(1971년)의 멤버와 영광을 계승한다는 선언.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 때부터 함께한 그레그 롤리(보컬, 건반), 마이클 슈리브(드럼)는 물론이다. 1970년대 초 재적한 기타리스트 닐 숀(그룹 ‘저니’)까지 이번에 다시 뭉쳤다. 신작 속에서 숀과 산타나가 오랜만에 벌이는 기타 결투가 쫀득하다.
둘째는 ‘Weezer’. 미국 베테랑 록 밴드 위저의 신작이다. 위저가 ‘Weezer’란 앨범을 내는 건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1, 3, 6집 제목이 모두 ‘Weezer’. 각각 블루 앨범, 그린 앨범, 레드 앨범으로도 불린다. 구별을 위해 하릴없이 표지 색깔을 붙인 것. 이번에 낸 10집 ‘Weezer’는 배경이 하얘서 벌써 화이트 앨범으로 명명됐다. ‘California Kids’부터 ‘Thank God for Girls’까지. 강력한 처음 세 곡만 들어봐도 답이 나온다. 멜로디와 에너지로 꽉 찬 음반.
한국엔 강산에가 있다. ‘…라구요’가 든 1집(1993년)에 ‘Vol. 0’(0집)이란 이름을 붙인 통에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든 4집(1998년)은 ‘Vol. 3’, ‘명태’가 든 7집(2002년)은 ‘Vol. 6’다. 그 사이 앨범은 모조리 ‘더하기 1’을 해야 몇 집인지 나온다. ‘Vol.…’을 안 붙인 8집 ‘물수건’(2008년) 이후 새로운 정규앨범이 없다. 9집은 언제 나올까. 제목으론 ‘Vol. 8’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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