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둘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냉철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기분과 느낌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그 상황에서의 최선만을 따질 수 있는 평정심. 알파고는 바둑 실력 이전에 그런 점에서 이미 이세돌 9단을 앞서고 있었다. 기계와 달리 인간 최고수 역시 감정 기복을 겪기 때문이다.
백은 중앙 몸싸움에서 흑에게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에 두 번의 이단젖힘을 당하고도 별다르게 반격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기분은 나빠도 백이 좋지 않은 행마를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백 ○가 나왔다. 흑에 밀리는 것 같은 상황에서 ‘반격’의 의미로 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백 ○는 지나친 피해 의식으로 인한 무모한 질주였다. 그냥 참고도 백 1, 3으로 유연하게 늘어 일단 하변 백 집을 만들어야 했다. 우변은 백 5로 갈라치면 백 9까지 타개에 별문제 없다. ‘가’로 끊는 약점도 노려 볼 수 있다.
느슨해 보이는 흑 75가 침착한 호수. 백 76, 78의 보강이 어쩔 수 없는데 흑 79까지 선수로 실리를 챙기고 흑 81로 우하 귀를 큼지막하게 차지해 단숨에 흑의 우세가 확정됐다. 실전과 참고도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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