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의 한국 블로그]한국의 택시, 때론 당황스럽고 때론 서럽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0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이주여성공동체 ‘미래 길’ 공동대표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이주여성공동체 ‘미래 길’ 공동대표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는 난감한 일 중 하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버스 두 대가 정류장에 나란히 도착하면 세 번째 온 버스는 서지 않고 가버리기 일쑤였다.

지난해 한 대학의 일본어과 학생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불편한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사람이 타자마자 버스가 출발해 넘어질 뻔했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 승객들이 앉거나 손잡이를 잡는 것을 확인하고 출발하는 기사들이 요즘엔 많아졌지만, 여전히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서울 지하철은 이용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일본 지하철보다 나은 점도 있다. 일본은 전철 안에 주간, 월간잡지 광고가 많고 내용이 스캔들 중심이어서 어지러운 느낌이 든다. 한국 차내 광고는 공익성을 담은 내용이 많고, 문화 혜택을 주는 광고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지나가다가도 광고를 휴대전화로 사진 찍고 갈 때가 많다. 플랫폼에 시가 적혀 있는 것도 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하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즐거움이다.

다만 시설적인 면에선 아쉬운 점도 있다. 1호선이나 3호선처럼 오래전에 만들어진 역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플랫폼도 있다. 교통 약자를 위한 편의 시설이 완비됐으면 좋겠다.

교통수단 중 제일 당황스러웠던 건 택시였다. 택시를 잡을 때 손을 올리고 크게 흔드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손을 앞으로 쑥 내밀고 잡는다. 그걸 모르고 택시가 올 때마다 손을 올려 크게 흔드니 다 가버렸다. 겨우 정차하는 택시가 있다 해도 일본처럼 자동문인 줄 알고 가만히 서 있었더니 금방 떠나는 통에 택시 잡기가 참 어려웠다.

택시를 무사히 잡아탔다 해도 황당한 일은 생겼다. 한 택시기사는 20분 동안 휴대전화를 들고 부인인지 애인인지 모를 상대에게 같은 욕을 무한 반복했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는 손님이 왜 20분 동안이나 일방적으로 욕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하나 다행이었던 건 내가 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기사가 하는 욕이 한국말로 얼마나 강도가 센 것인지 와 닿진 않았다. 외국인으로서 서러웠던 적이 또 있다. 수업에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타고 급히 가는 중이었다. 나는 목적지가 다가오자 “왼쪽! 왼쪽!” 하고 외쳤는데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왜 갑자기 반말을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난 일본사람인데 명사만 말하는 것이 반말이 될 줄은 몰랐다”고 답했다. 일본에서는 반말이라는 개념이 없고 급할 때 단어만으로도 말하곤 한다. 기사 아저씨는 “왼쪽은 명사가 아니라 지시대명사잖아요. 아는 척하기는…” 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항의했다. 외국인으로서 이해받지 못한 것이 불쾌하고 황당했다.

물론 친절한 기사 아저씨도 많다. 그래서 즐겁게 대화할 때도 있다. 그래도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걸 느낀다. 먼 시골에 가 택시를 탔던 날이었다.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가 너무 재밌어서 잠시 정신줄을 놓아버리곤 내릴 때 여행 가방을 트렁크에서 꺼내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내가 명함도 건네줬던 기사였기에 금방 연락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가방을 찾을 수 없었다. 아저씨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영 기분이 찜찜했다. 그 이후론 택시 탈 때 항상 기사님의 관상을 본다.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면 멀리 돌아갈까 봐 나는 되도록 일본인 티가 나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한국인처럼 말한다.

그래도 요즘 버스에서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승하차 때마다 인사해주는 기사를 종종 보게 돼 기분이 좋다. 택시를 탈 때 나도 먼저 기사 아저씨에게 인사하고 내릴 때도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말한다. 택시기사를 평가하는 제도가 시행된다는 소식이 들려 반가웠다. 대중교통 종사자들은 국가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직업이다. 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친절한 얼굴이 되길 바란다.

야마구치 히데코 일본 출신 이주여성공동체 ‘미래 길’ 공동대표
#한국 대중교통#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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