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라는 생소한 이름의 전염병이 국내에서 정체를 드러낸 지 1년이 됐다. 그 낯선 괴질(怪疾)은 심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던지는 한편으로 이 사회가 어떠한 만성 고질(痼疾) 상태에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그것은 병균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문제였다. 그 점에서 옛날과 지금의 전염병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96년 전 여름에도 큰 괴질이 돌았다.
1920년이었다. 8월 16일. 경성은 전역이 비상사태였다. 며칠째 창궐한 전염병으로 날마다 수십 명씩 환자가 속출하여 총 300명을 넘어서 있었다. 보균자로 판명된 사람도 100명 이상이었다. 훗날 콜레라로 불리게 되는 악성 전염병이었다.
‘전국의 괴질은 그칠 줄 모르고 나날이 맹렬한 형세로 번식하여 하루에 500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터인데, 16일 현재 총계가 7792명에 달하였다. 완치된 소수를 제외하면, 사망자가 2652명, 환자가 4918명. 이대로 가면 며칠 안에 환자가 만 명을 돌파할 상황이다.’(동아일보 1920년 8월 18일자)
이런 와중에 서울 시내 인의동에서 보균자 한 명이 또 발견되었다. 경관들이 보균자 최모 씨(47)를 집에서 관할 종로4가 파출소까지 데리고 왔다. 그리고 준비한 들것에 눕히려 했다. 전염병 환자 격리 병원으로 가려는 참이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못 탄다. 걸어서 가겠다.”
걸어가면 주변에 병균이 퍼질 염려가 있다고 경관이 호령을 해도 “내 몸이 이리 멀쩡한데 왜 들것을 타느냐”고 막무가내였다. 의심환자의 가검물을 받아 검사하는 것도, 격리 수용소로 호송하는 것도 경찰의 소관이었다. 당시 전염병 환자 격리 수용소는 ‘가면 죽는 곳’이라는 인식이 민간에 퍼져 있었다. 보균자나 병자를 경찰이 실어가면 가족들은 죽는 듯이 슬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환자 치료보다는 일반으로부터 격리가 주목적인 열악한 시설이어서 그 같은 공포도 무리는 아니었다. 경미한 증세로 격리 수용됐다가 거기서 악화하여 죽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당국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높을 때였다.
보균자와 호송 경찰이 탈것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소문을 듣고 웅성웅성 사람들이 파출소 앞에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수백 명에 이른 군중은 흥분하여 경찰을 규탄했다.
“이놈들, 공연히 생사람을 들것에다 담아 가려고…. 어디 보자” 하면, “죽어도 들것에는 타지 말어라” 하는 소리가 잇따르고 “성한 사람을 잡아다가 괴질 구덩이에 넣고자 하는 원수를 때려죽여라” 하는 고함이 이어졌다. 살벌한 형세에 경관들이 태도를 누그러뜨려 “그러면 인력거에 태워 가겠으니 흩어지라”고 설득했지만 인파는 더욱 늘어갔다. 1000명에 이른 군중은 참았던 불평이 일시에 폭발하는 듯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흔들며 근래 보기 드문 활극을 연출했다.
“인력거는커녕 자동차라 해도 저렇게 멀쩡한 사람을 어찌 데려간단 말이냐” “가지를 말어라. 가면 죽는다” “무죄이고 무병한 양민을 주검의 구덩이로 처넣으려는 경관을 때려죽여라. 파출소를 부숴라” 하며 군중이 파출소로 쇄도하자 경찰은 보균자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군중은 “다시 데려가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긴급 지원 요청을 받고 인근 동대문경찰서에서 경관 여러 명이 달려오자 군중은 더욱 흥분해 돌멩이를 던졌다. 경관 한 명이 머리를 맞아 다치고 파출소 유리창이 깨졌다. 폭동 같은 분위기 속에 경찰은 겨우 인파를 빠져나와 보균자 최 씨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후에도 군중은 흩어지지 않고 밤늦도록 네거리에 빽빽이 모여앉아 있었다.
거리 곳곳에 송장 실은 들것이 오가고,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며칠 동안 사람들 신경은 과민해져 병이 들지 않은 사람도 마음이 흉흉하여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되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그리고 이날 사건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격리 수용 병원의 시설과 처우가 열악한 탓도 있지만, 일반 대중에 아직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보급되지 못한 것도 중대 원인이다.’
그러면서 신문은 예민해진 사람들을 달래듯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의 마음이란 극히 이상하여 ‘내가 저기를 가면 반드시 죽으려니’ 하든지 ‘내가 이러한 약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려니’ 하는 생각이 병자의 마음에 꼭 맺히면 죽지 아니할 사람도 죽게 되는 일이 적지 아니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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