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짐노페디’로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 에리크 사티(1866∼1925)의 삶은 수많은 독특한 얘깃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눈에 띄는 몇 가지만 꼽아 봐도 다음과 같습니다. 명문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지만 선생들이 ‘이렇게 피아노를 못 치는 쓸모없는 학생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자퇴했습니다. 젊어서는 안데르센 동화에 심취했고 나이 들어서는 건물 모형이나 도면을 캐비닛 하나 가득 채우는 게 취미였습니다. 악보를 840번 반복 연주하도록 표시한 작품(‘벡사시옹’)도 있습니다. 지시에 따르면 연주에 10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계속할까요. 젊어서는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샹송을 작곡해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쏠쏠한 수입을 얻지만 나이 든 뒤에는 ‘쓸모없는 곡’이라고 이 노래들을 외면합니다. 친척이 죽으면서 적지 않은 유산을 물려준 뒤로는 최신 유행의 양복과 중절모, 우산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녀 ‘벨벳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에는 늘 망치를 넣어 다녔습니다. ‘불의의 습격’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는 겁니다. 식습관도 독특해서 우유나 죽 등 ‘흰 음식’만 먹었다고 합니다.
그의 유일한 연애담도 독특합니다. 인물화 모델로 유명했던 여성과 하루 저녁 데이트를 한 뒤 다짜고짜 ‘결혼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거절당했죠. 재미있는 것은 이 여성의 행동입니다. 며칠 뒤 사티의 이웃으로 이사를 옵니다. 그 뒤 나름 잘 지냈던 모양입니다. 이웃이 관계를 청산하는 방법은? 이 여인은 이후 다시 이사를 가버렸고, 사티는 시름에 잠겼습니다.
이 여성이 바로 르누아르와 로트레크 등의 모델이 되었던 쉬잔 발라동입니다. 스스로도 화가로 활동했으며, 풍경화가로 이름을 날린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발라동이 사티와 만났을 때 위트릴로는 이미 열 살이었으니, 하마터면 사티가 그의 양부가 될 뻔했습니다.
17일은 이 사티의 탄생 150주년 기념일입니다. 지난해 그의 서거 90주년을 맞이해 ‘배경음악’ ‘환경음악’의 시조였던 그의 역할을 소개했습니다만, 오늘은 그의 특이한 개인적 면모를 살펴보았습니다. 투명하고 명상적인 ‘짐노페디’를 들으면서 봄날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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