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아래로 흐르고 강은 바다로 흘러든다. 이에 대해선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너무나 명백해서다. 그런데 거기에도 예외는 있다.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고 사라지는 오카방고 강이다. 이 강은 아프리카 대륙의 남부를 적시는 생명수로 그 시작은 앙골라 고원에 내리는 호우다. 그 빗물은 고원을 흘러내린 뒤 강으로 모습을 바꿔 나미비아와 앙골라의 국경을 이루며 동진하면서 팍팍한 땅을 적신다. 그러다 보츠와나 국경에 근접해서는 보츠와나 남동부의 저지대 마카디마키 팬(Pan·물이 사라진 호수)을 향해 방향을 튼다. 그 앞에 거대한 칼라하리 사막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사막은 예상 증발량이 실제 강수량을 초과하는 곳이다.
그런 사막 위로 강은 흐를 수가 없다. 모래가 그 물을 빨아들여서다. 그러니 물과 불만큼이나 오카방고 강과 칼라하리 사막은 ‘상극(相剋)’의 관계다. 따라서 두 자연의 조우는 ‘만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충돌’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격하다. 한번 상상해보라. 강과 사막이 만나는 장면을. 나 역시 그게 궁금해 그 현장을 찾았다. 그 광경은 놀라웠다. ‘삼각주(三角洲)’다. 대륙의 내륙에, 그것도 거대한 칼라하리 사막 한가운데에 삼각주라니…. 게다가 온통 풀과 나무로 덮인 초원이다. 가끔 TV를 통해 보던 ‘오카방고 델타(The Okavango Delta)’가 그것인데 내륙의 삼각주로는 지상에서 가장 크다.
삼각주는 ‘물 반 땅 반’의 특이한 지형이다. 강물이 바다나 사막 등 장애물에 가로막혀 흐름을 멈추게 되면 넓게 퍼지게 되는데 그게 늘 삼각형을 이루기에 그렇게 불린다. 그때 강물에 실려 온 엄청난 토사는 가라앉는다. 삼각주를 형성하는 크고 작은 수많은 둔덕(沙洲·사주)이 그것이다. 그러니 삼각주는 허다한 토사 둔덕의 사주와 그 사이로 흐르는 그 수만큼의 작은 물길의 집합이다. 그래서 땅은 비옥하고 농사짓기에도 그만이다.
그렇지만 오카방고 델타만은 이런 통상의 모습을 따르지 않는다. 여긴 습지의 초원이고 동물의 낙원이다. 사막이라도 늘 1m 이상의 수심을 유지하며 신선한 강물이 흐르다 보니 아건조 기후대의 사바나(Savanna·해발 1000m 이상 고지의 초원)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에겐 그야말로 오아시스다. 그래서 건기만 되면 동물들은 물을 찾아 이곳으로 떼를 지어 몰려온다.
그런 초원의 오카방고 델타에는 완벽한 먹이사슬이 형성돼 있다. 하마 코끼리 기린 같은 대형 초식동물부터 사자 표범의 포식자에 이르기까지. 그 광경은 경비행기 투어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코끼리와 기린 무리는 유유히 물가를 거닐고, 하마 가족은 수중에서 먹이를 찾으며, 얼룩말은 땅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이 광경이 워낙 독특해 습지초원 오카방고 델타는 ‘사파리 투어의 성지’로도 명성이 높다.
그 오카방고 델타를 보고 있노라면 여러 상념에 젖는다. 사막과 강, 잘못된 만남처럼 보였던 두 자연이 동물의 낙원을 만든다는 점에서다. 인간 세상에서라면 어떨까. 서로를 파멸로 이끌 상극이라면 그 만남은 악연이다. 그런 악연은 격돌로 치달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 보니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 한다. 삼국지의 유비 조조 손권이 그랬고, 초한지의 항우와 유방이 그랬듯 그 격돌은 늘 끝장내기로 치달았다. 그리고 세상은 승자만을 기릴 뿐인데 그 승자마저 영원하지 않으니 결과는 모두가 패자다. 소위 문명은 이렇듯 냉랭하고 세상은 늘 대결의 무대라 살기가 팍팍하다.
하지만 오카방고 델타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생명을 잉태하는 평화와 화합의 장이다. 그걸 보며 깨닫는다. 절대로 만나서 안 될 것이란 없음을. 강이 흐름을 멈추어도, 사막이 사주와 초원으로 바뀌어도, 오카방고 델타에서 자연은 여전히 자연이다. 변화라면 더 성숙하고 더 아름다워졌다는 것이다. 강이 사막을 만났다 해서 그걸 대결과 충돌로 보는 것은 인간의 눈일 뿐이다. 자연의 눈으로 보면 아니다. 악연도 없고, 상극도 없고, 앙숙도 없다. 일방이 스러진 것은 더더욱 아니고…. 충돌을 평화와 화합으로 이끄는 지혜. 오카방고 델타는 그걸 가르치는 자연의 교실이다. ―마운(보츠와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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