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썰렁해도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9일 03시 00분


“엄마, 웃지 마. 절대 웃으면 안 돼.”

남매는 서로 내 입을 막으며 웃지 말 것을 주문하곤 했다. 누나는 남동생이 이른바 썰렁 개그를 남발하는 것은 아무 말에나 잘 웃어주는 엄마 탓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동생이 우스운 이야기를 시작할 눈치를 보이면 천방지축 남동생의 입막음은 어려우니 엄마부터 단속하는 거였다. 그러나 누나가 싫어할수록 더 짓궂게 썰렁해지는 아들의 행동이 귀여워서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웃고 만다.

한편 “엄마, 이 얘기 진짜 웃겨”라며 딸이 말을 꺼낼라 치면 이번에는 아들이 달려와서 나를 웃지 못하게 막는다. 누나의 저런 개그에 웃어주면 친구들에게 ‘왕따’당하기 쉽다는 능청까지 곁들인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또 웃고 만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에서 썰렁 개그를 가능케 만드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서로 재미없다고 깎아내리면서도 경쟁적으로 터뜨리던 남매의 썰렁 개그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덩달아 나도 아이들과 함께 웃는 일이 줄어들었다. 아이들이 어느새 웃음에서 자꾸 멀어지는 어른의 세계로 접어든 것이다.

아이들은 하루에 삼사백 번 웃지만 어른은 고작 열다섯 번 내지 스무 번 웃는다는 통계가 있다. 어른이 되면서 웃음이 20분의 1로 준다는 것이다. 구글의 ‘혁신과 창의성 프로그램’ 총괄 매니저인 프레데리크 페르트는 “다섯 살 어린이는 하루에 98% 창의적인 일을 하고 65개의 질문을 하며 166번 웃는다. 그러나 마흔네 살의 어른은 창의적인 일이 2%에 불과하며 하루에 6개의 질문을 하고 11번 웃는다”고 말한다. 창의성과 호기심과 웃음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얼른 봐도 그 셋의 공통점은 말랑말랑함, 유연성인 것 같다.

지난주에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맞춤형 유머가 화제가 되었다. 비록 아직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하긴 했지만 그동안 상대에 대해 경직되고 날을 세우던 모습만 봐왔던 터라 조금 썰렁하다고 해서 굳이 우리가 웃음에 인색할 이유가 있겠는가. 웃음 끝에서 ‘혹시’ 하는 우리 정치에 대한 희망을 다시 가져보기도 했다.

웃음이 건강과 행복을 불러온다고 하여 하루에 5분 정도 거울을 보며 억지로라도 크게 웃으라고 한다. 또한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 썰렁 개그여도 좋다. 이제부터는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윤세영 수필가
#엄마#남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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