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육개장과 개장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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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1777년) 7월 28일(음력) 밤에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 이르러 강용휘가 전흥문에게 3문의 돈을 주어 개장국(狗醬)을 함께 사 먹고 대궐 안으로 숨어 들어가 별감 강계창과 나인(內人) 월혜를 불러 귀에 대고 한참 동안 속삭였다.’(‘명의록’)

‘명의록’은 정조 암살미수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 ‘역린’의 소재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암살 시도가 실패한 후, 범인 전흥문은 흥원문(경희궁)으로 빠져나와 달아났고, 강용휘는 금천교(창덕궁) 방향으로 달아난 후, 이튿날 공범 홍상범 등과 개 잡는 집에 다시 모였다.’

앞의 ‘대궐 밖 개 잡는 집’과 이튿날 모인 ‘개 잡는 집’은 다른 곳이다. 18세기 후반 한양에는 군데군데 개 잡는 집과 밤늦게 문을 여는 개장국 파는 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고기는 일상적으로 먹는 상식(常食)이었다. ‘개고기=복날 보양식’은 엉터리다. 한식에는 보양식이 없다. 개, 장어, 민어, 삼계탕 등이 보양식이라는 기록도 없다.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육축(六畜)을 먹었다. 육축은 집에서 기르는 6가지 짐승으로 소, 말, 양, 돼지, 개, 닭이다. 개의 식용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도 말이 많았다. 조선 말기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도 개고기 식용을 둘러싼 찬반 사례가 나타난다.

‘연경(지금의 베이징)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을뿐더러 개가 죽으면 땅에 묻어준다. 심상규(1756∼1838)가 연경에 갔을 때 경일(庚日·복날)을 맞아 개고기를 삶아 올리도록 하였다. 연경 사람들이 크게 놀라면서 이상히 여기고 팔지 않았다. 심상규가 그릇을 빌려 삶았는데 그 그릇을 모조리 내다버렸다. (황해도) 장단의 이종성(1692∼1759)은 잔치에 갔다가 개장국을 보고 먹지 않고 돌아와 말하기를,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이 아니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달랐다.’

심상규가 성절사로 연경에 간 것은 1812년, 청나라 때다. 중국도 개고기를 제사에 사용했지만 청나라 이후, 중국인들은 개고기를 피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기마민족이다. 사냥이 주업인 기마민족에게 개는 수렵의 동반자이자 목숨을 지켜주는 동료다. 농경민족의 개와는 지위가 다르다. 남쪽의 광둥 성, 광시 성 등에서는 지금도 개고기를 먹는 반면 북쪽 지역에서는 먹지 않는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개가 청 태조 누르하치의 생명을 구했다는 설화 때문이다. 누르하치가 깊은 산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개가 불길에서 누르하치를 구했다. 청을 건국한 만주족이 개를 먹지 않자 중원의 한족도 따른다.

조선 후기에는 개고기 식용파와 비식용파가 나뉜다. 1791년 사은사 일행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문인 김정중은 ‘연행록’에서 ‘중국인들은 비둘기, 오리, 거위 등을 먹지만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했고, 1712년 청나라를 다녀온 김창업은 ‘연행일기’에서 ‘평안도 가산의 가평관에서 이민족(오랑캐)에게 개고기와 소주를 대접받았다’고 했다.

육개장은 개장국(狗醬羹·구장갱)을 대신한다. 일제강점기 초기, 경부철도 건설로 대구에 사람들이 모이고 시장이 선다. 이미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이 많다. 대구 명물 육개장이 나타난다. 대구탕(大邱湯)이라 부르기도 한다. 육개장은 ‘쇠고기+개장국’이다. 개장국 스타일로 끓인 쇠고깃국으로 시장통 등에서 팔던 주막 음식이었다. 육개장 끓이는 법을 설명하는 칼럼(1939년 7월 8일자 동아일보) 제목은 ‘오늘 저녁엔 이런 반찬을’이다. 필자는 한식연구가 조자호 씨. 육개장은 길거리 식당 음식에서 가정으로 확산된다. 쇠고기 부위를 한정하지는 않고 ‘여러 종류의 국거리’라고 표현했다. 고기는 삶은 후, 반드시 손으로 찢고 양(내장)은 칼로 썬다. 대파를 많이 사용한다. 고기와 고춧가루, 고추장으로 양념한 채소를 버무려 다시 한소끔 끓여서 낸다. 한 번 삶아낸 밀국수를 넣어서 먹으면 맛이 희한하다고 기록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을 들고 ‘여름철 보양식은 개고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여름철엔 휴식, 수면, 운동, 균형 잡힌 식사가 필요하다. 여름철 보양식은 없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육개장#개장국#명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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