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에서 출판사를 열고 2년 차 되던 해였다. 그때 처음으로 탈(脫)서울 인구가 서울로 들어오는 인구를 앞질렀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제는 서울 총인구가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 뉴스가 보도될 만큼 탈서울이 가속화하고 있다. 6년 전 우리가 서울을 떠났을 때만 해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통영에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구심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멀고 먼 땅 끝 마을, 백화점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물론 나고 자란 익숙한 환경을 떠나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려움 못지않게 설렘과 호기심도 컸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먹고사는 문제. 우리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그 부분이었다. “통영에서 뭐 하고 살 건데요? 고기 잡을 거예요? 아님 농사를?” 어부와 농부는 아무나 되는가? 기술도 노하우도 없는 서울 촌뜨기들에게는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는 배운 대로 각자 서울서 하던 일을 계속 하기로 했다. 남편은 전공을 살려 생태건축을, 나는 오랜 꿈이었던 출판을.
우리의 선택은 용감했지만 지인들의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수도권 중심의 인프라가 구축된 비즈니스를 지역에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를 알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해에도 수십 번 배낭에 책을 짊어지고 서울과 통영을 오가면서 수도권 중심의 출판 유통구조를 몸으로 배워야 했고, 그 시스템을 지역 출판에 적용하기 위해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번 한계 상황을 넘나들면서 그렇게 만 4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우리는 여전히 출판사의 간판을 달고 살아가고 있으며 작은 책방과 북스테이까지 열면서 조금씩 지역의 삶에 스며들고 있다.
땅을 옮겨 새로 심은 나무가 뿌리를 튼튼히 내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햇살과 바람과 물의 돌봄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에서 통영으로 옮겨온 우리가 비교적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천천히’ 자연의 순리에 따라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 깊은 이웃들의 배려와 도움도 컸다. 그리고 일천한 경험에서 배운 것은 외지인일수록 ‘지역에 필요하지만 아직은 없는’ 비즈니스를 하는 게 좋다는 사실이다. 지역 토박이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시장보다는 힘들더라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시작한다면 누구나 환영받을 수 있다.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자의 시선으로 함께 살아갈 이웃의 필요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것. 우리가 무사히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도 천천히,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문화예술 도시 통영에 꼭 필요한 출판을 시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말이다.
※필자(43)는 서울에서 광고회사, 잡지사를 거쳐 콘텐츠 기획사를 운영하다 경남 통영으로 이주해 출판사 ‘남해의봄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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