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청동 정병, 천년만에 빛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3일 03시 00분


삼척 흥전리 사지서 국보급 발굴

강원 삼척시 흥전리 사지에서 지난달 출토된 청동 정병.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정병은 형태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됐고, 몸체는 국보·보물로 지정된 고려 정병 3점보다 날씬한 편이다. 색상은 짙은 감청색이나 진회색 등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강원 삼척시 흥전리 사지에서 지난달 출토된 청동 정병.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정병은 형태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됐고, 몸체는 국보·보물로 지정된 고려 정병 3점보다 날씬한 편이다. 색상은 짙은 감청색이나 진회색 등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강원 삼척시 도계탄광에서 차량 바퀴가 헛돌 정도로 급경사를 5분 정도 올라가면 들꽃이 지천으로 핀 산길이 나온다. 다시 잠시 걸으면 717m 고지 아래 ‘깊은 산속에 이렇게 너른 평지가 다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이 나온다. 2014년부터 발굴 조사 중인 흥전리(興田里) 사지(寺址)다.

“여기 뭔가 이상한 게 있다!”

지난달 18일 1호 건물지 구들 자리에서 호미로 흙 제거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현장에 있던 박승현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사를 불렀다. 급히 달려간 박 연구사의 눈에 구들 속에 있는 청동 소재의 물건 2개가 들어왔다. 흙 속에 파묻혀 있었지만 와인잔 같은 굴곡이다.

1000여 년 만에 햇빛을 본 청동 정병(淨甁)이다. 정병은 조심스레 흙을 털어내자 오랜 세월에도 훼손이 없는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병은 절터 내 스님들이 기거하던 건물의 구들에 나란히 옆으로 누워 있었다. 문화재청 제공
정병은 절터 내 스님들이 기거하던 건물의 구들에 나란히 옆으로 누워 있었다. 문화재청 제공
정병은 스님들이 정수(淨水)를 담아 부처님에게 바치는 공양 도구다. 이번에 출토된 정병은 국내에 단 3점밖에 없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북 군위 인각사에서 출토된 2점은 일부 훼손됐고, 충남 부여 부소산 것은 일제강점기 공사 중 수습돼 가치가 명확하지 않다.

흥전리 정병은 중국에는 없고, 고려시대에도 사라진 양식인 8각의 첨대(꼭지 위 긴 부분)를 갖고 있다. 첨대 길이는 8세기 후반 만들어진 인각사 정병보다 짧고, 높이는 약 35cm로 고려 정병보다 작다. 문양은 없고 정병 몸체의 어깨 위에 장식으로 선이 음각돼 있다.

2일 현장 설명회에서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재위원)는 “이번 정병은 9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돼 인각사 정병 이후 11세기 고려 정병까지의 약 200년 공백을 메우는 연결 고리”라며 “형태가 국보 92호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당나라 제작설이 있는 일본 나라박물관 소장의 정병도 이번에 출토된 정병과 형태가 매우 유사해 통일신라에서 만든 정병인 게 확실해졌다고 봤다. 흥전리 정병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 처리와 정밀 분석을 거쳐 문화재 지정이 추진될 예정이다.

흥전리 사지에서는 금당지(金堂址) 탑지(塔址) 등 주요 가람 시설이 확인됐고, 특히 신라 시대 왕이 임명하는 승단의 최고 통솔자인 ‘국통(國統)’이 새겨진 비석 조각을 비롯해 섬세하고 화려한 금동번(깃발) 등이 출토돼 당대 주요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건물지도 확인됐지만 사찰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유물도 거의 없어 고려 초 폐사된 뒤 묻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의 사찰명은 확인되지 않았다.

흥전리에 있던 사찰은 경주에서 월악산 진전사와 강원 양양 선림원 등 선종 사찰로 이어지는 중간 다리로 평가된다. 박찬문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은 “이곳은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분기되는 한편 한강과 낙동강, 동해 수계가 나뉘는 요충지”라며 “사찰이 교통로를 지키고 나그네들의 숙소 역할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굴 조사는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13년부터 진행 중인 ‘폐사지 종합학술조사’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실장은 “전국 옛 절터 5400여 곳은 겉으론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지하에 각종 문화재가 묻힌 보고(寶庫)”라며 “일부에서 축대가 무너지고 유물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하는 일이 생겨 종합 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삼척=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삼척 흥전리 사지#통일신라#청동 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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