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덕업일치’…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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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사전을 삼키다/정철 지음/252쪽·1만3000원/사계절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이봉섭 지음/216쪽·1만9500원/사이언스북스

‘사전 덕후’ 정철 씨―‘비행기 덕후’ 이봉섭 씨

《덕후(마니아)가 두각을 나타내는 세상이다. 이들의 호기심과 열정은 때로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 덕후 중에서도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은, 이른바 ‘덕업일치’를 이룬 이들은 행복한 덕후로 꼽힌다. 카카오에서 웹사전을 만들고 있는 ‘사전 덕후’ 정철 씨(40)와 항공 설계 연구가이자 ‘비행기 덕후’인 이봉섭 씨(36)의 책이 최근 출간됐다. 이들의 인터뷰를 일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 》

‘검색, 사전을 삼키다’ 정철 씨

사양길에 들어선 종이 사전과 CD롬 사전을 든 정철씨. 그는 “미래의 사전은 번역기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사양길에 들어선 종이 사전과 CD롬 사전을 든 정철씨. 그는 “미래의 사전은 번역기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나를 ‘사전 덕후’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싫다는 게 아니다. 아직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는 얘기다. 훌륭한 분도 많은데….


어릴 때부터 수집하고 정리하는 걸 좋아했다. 지우개, 딱지, 우표를 모았고 사춘기 이후에는 레코드판을 모았다. 그것들을 내 방식대로 정리할 때 희열을 느꼈다. 분류와 정리에 대한 강박은 나를 움직인 추동력이다.

그래서 나는 사전에 빠지고 말았다. 사전은 아름답다. 어휘 수집은 수집과 정리의 최후 단계이며, 사전은 적게는 10만 개, 많게는 30만∼50만 개의 어휘를 일관되게 몇 개의 기술을 통해 정리한 책 아닌가.

2002년 오픈형 사전 서비스 기획안을 들고 네이버의 문을 두드렸고 거기서 일하게 됐다. 그때부터 카카오로 옮긴 지금까지 웹사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사전 편찬자에게 과거의 사전은 좋은 참고서다. 웹 검색은 사전의 본질적인 기능을 따라한 것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사전을 만드는 동안 종이 사전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사전은 CD롬, 전자사전, 웹사전, 앱사전으로 옷을 바꿔 입으며 분투 중이다. 이렇듯 홀대받는 사전을 위해 책을 썼다. 독자들이 사전의 중요성을 알아주면 좋겠다. 웹 검색을 했을 때 불충분하다면 적극적으로 항의해주기 바란다. 그래야 사전은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좋은 사전을 갖고 싶다.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 이봉섭 씨

2012년 ‘비거’ 모형의 비행 실험을 한 이봉섭 씨가 모형을 들고 찍은 사진. 이 씨는 정평구의 비거는 이 모형보다 10배 정도 클 것으로 추정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2012년 ‘비거’ 모형의 비행 실험을 한 이봉섭 씨가 모형을 들고 찍은 사진. 이 씨는 정평구의 비거는 이 모형보다 10배 정도 클 것으로 추정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내 인생은 비행기로 점철돼 있다. 어린 시절 영화 ‘아름다운 비행’을 보고 매료된 후 줄곧 비행기에 빠져 살았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항공대에서 항공 우주 공학과 학·석사 통합과정을 마친 뒤 현재는 박사과정 중이다. 군대도 공군 정비병으로 다녀왔다.

여러 비행기 중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특히 관심을 쏟은 것은 ‘비거(飛車)’였다. 조선의 발명가인 정평구가 임진왜란 때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비거는 라이트 형제의 그것보다 300년 이상 앞선다.

비거에 대한 관심은 군 복무 중이던 2002년 우연히 잡지를 보다가 갖게 됐다. 당시 항공대를 휴학 중이었는데 한국 밖에서 객관적으로 비거를 연구하려고 러시아 유학을 감행했다. 유학 중 틈틈이 16세기 조선의 정평구가 썼을 것으로 생각되는 기술을 추정해 모형을 만들었다.

특히 날개를 재현하는 게 어려웠다. 슬럼프에 빠진 중에 전통 우리 배에 달린 돛이 비행기의 날개 구조와 똑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율했다. 2006년 비거 모형을 날리는 것에 성공했다. 이 책에는 비거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나의 추정과 재현 과정이 담겨 있다.

요즘 나의 관심은 친환경 비행기다. 비거를 연구하면서 옻칠이나 목재 같은 자연친화적인 재료에 대해 많이 배웠다. 후대에 남을 만한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 비거의 색깔이 녹아든, 미래형 비행기를 세상에 내놓는 게 목표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검색 사전을 삼키다#정철#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이봉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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