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성과주의를 비판해 화제가 됐던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예술론을 담은 새 책을 내놓았다. 이 책 역시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한 교수에 따르면 현대의 아름다움은 ‘매끄럽다’로 요약된다. 가령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들이 그렇다. 한 교수는 “어떤 재앙도, 상처도, 깨어짐이나 갈라짐도, 심지어 봉합선도 없다”며 “쿤스 예술의 핵심은 매끄러운 표면과 이 표면의 직접적인 작용이며 그 외에 해석할 것도, 해독할 것도, 생각할 것도 없다”고 했다. 매끄러움의 미학을 좇는 스마트폰의 미끈한 터치스크린, 털 없는 말끔한 몸을 만드는 브라질리안 왁싱,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 등 지금 이 시대를 상징하는 특징은 ‘매끄러운 긍정성’으로 집약된다는 것이다.
이 매끄러움이 진정 아름다운 것일까? 저자는 디지털 미(美)와 자연미를 대비한다. “자연미는 언제나 자기애적인 성질을 갖고 있는 단순한 만족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고통만이 자연미에 접근할 수 있다. … 디지털 미는 자연미에 대립한다. 디지털 미에서는 타자의 부정성(否定性)이 완전히 제거되어 있다. 부정성 없는 만족, 다시 말해 내 마음에 든다라는 것이 디지털 미의 징표다.”
한 교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이 같은 부정성을 내포한다고 말한다. 예술 작품은 그것을 대하는 인간을 뒤흔들고, 파헤치고, 의문을 제기하고, 삶을 바꾸라고 경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런 불편하고 울퉁불퉁한 예술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블랑쇼, 보들레르, 릴케, 아도르노, 베냐민, 바르트 등 철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부정성의 미학’을 뒷받침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게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전율과 불안과 고통을 주고 살아온 삶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의문을 갖게 할 때 비로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긍정적인 현대의 아름다움이 사회 비판의식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저자는 현대미는 소비 사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본다. 자극과 흥분을 일으키는 시각적인 즐거움,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 등이 그렇다. 저자가 보기에 진정한 아름다움은 소비될 수 없는 것이다. “소비와 미는 서로 배척한다. 미는 향유하라고, 소유하라고 유혹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는 관조적인 머무르기로 초대한다”고 말한다.
미에 대한 저자의 철학과 해석이 담겨 있지만 다른 철학 이론서들처럼 난해하진 않다. 문장도 비교적 간결하다. 철학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철학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낯설지 않게 읽을 만하다. 무엇보다 앞선 저서들과 같이 짧은 분량 속에 담은, 현대 물질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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