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자기 것만 챙기고 손톱만큼도 손해 안 보려고 해요. 그런데 하는 일마다 다 잘돼요. 자식들까지 명문대에 척척 붙었다니까요.”
지인이 회사 동료에 대해 말했다. 이어 “그러고 보면 선하게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렇다. 인생은 공덕과 비례하지 않는다.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숱하게 변주되는 ‘권선징악’에 열광하는 건 일종의 판타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개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도 고통 속에 내던져진다.
화자의 시이모는 남동생이 빚 때문에 감옥에 갈 처지가 되자 대기업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빚을 갚아야 했다. 이후 어머니가 몰래 자신의 이름으로 남동생의 보증을 서 빚더미에 휘말린다(‘이모’).
‘봄밤’의 수환은 어떤가. 스무 살부터 쇳일을 시작해 철공소를 차리지만 거래처의 횡포로 부도를 맞고, 재산을 빼돌린 아내는 잠적한다. 교사였던 영경은 전남편에게 아이를 뺏긴 후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된다. 수환과 영경은 우연히 만나 부부가 되지만 수환의 류머티즘 관절염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사진을 배워서 찍고 싶어.” 관주는 여자친구 문정의 말에 카메라를 사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카메라는 문정의 손에 쥐어지지만 관주가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했다(‘카메라’).
이들의 곁을 지키는 건 술이다. 커피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 맥주 한 캔에 소주 두 병을 조금씩 섞어 30분도 안 돼 마셔 버린다. 보드카, 와인, 위스키까지. 술병은 뻥뻥 열린다. 꾸역꾸역 살아가게 만드는 숨구멍처럼. 제목 ‘안녕 주정뱅이’는 이들을 향한 위로처럼 들린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무심코 보아버린 한 장면이 인간을 꼬꾸라뜨리는 모습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애처롭지만 축축 처지지는 않는다. ‘이모’ ‘카메라’ ‘층’ ‘역광’ 등은 반전을 지닌 탄탄한 구조로, 책장을 넘기는 데 가속도가 붙는다.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선 적이 없다는 작가의 술 사랑도 찐득하게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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