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삶은 단지 하루하루 생존해 나가는 것, 사는 척하는 것일 뿐이었다.―페레이라가 주장하다(안토니오 타부키·문학동네·2011년) 》
나이가 들고 챙겨야 할 처자식이 생기면서 회사원들은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아 둔 채 살아간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페레이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와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 다를 뿐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리스보아란 조그만 신문 문화면 편집을 맡고 있는 50대 후반의 페레이라는 원래 대형 신문사에서 사건, 사고를 담당하던 기자 출신이다. 젊은 시절에는 약간의 정의감이라도 있었지만 이제 현실과 동떨어진 채 자신이 맡고 있는 문화면에 발자크의 번역본이나 부고 기사를 실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평화로운 그의 일상과 달리 1938년 포르투갈에서는 살라자르의 독재가 계속되고 있었고 옆 나라 스페인은 내전 중이다. 페레이라는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르는 척할 뿐이다.
그런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청년이 바로 몬테이루 로시다. 문화부 수습기자로 채용된 그는 페레이라의 요구와 달리 정권에 저항하다 의문사를 당한 예술가들의 부고 기사를 보내온다. 페레이라는 철없는 수습기자의 기사를 ‘킬’시키고 다른 기사를 써오라고 지시하면서도 어째서인지 로시의 기사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 게다가 신문에 실리지도 않는 기사에 대해 원고료까지 지불한다. 페레이라는 로시의 기사를 보며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불꽃을 보게 되고 하나둘 기사를 내보내게 된다. 하지만 정권 비판적 내용을 눈여겨본 비밀경찰에 의해 로시는 결국 살해되고 페레이라는 마지막으로 후배 기자의 죽음을 다룬 기사를 쓰며 처음으로 자신의 ‘주장’을 하게 된다.
1990년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였던 타부키는 이 소설의 많은 문장에서 ‘주장하다’란 뜻의 동사를 썼다. 그는 ‘레모네이드를 마신다고 주장했다’란 문장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주장하다라는 동사를 넣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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