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기대감과 동시에 ‘내게 뭔가 부탁할 게 있나?’ 하는 경계심이 스쳐간다. 누가 밥을 사겠다고 해서 나갔다가 부담스러운 부탁을 받은 뒤부터다. 그렇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같이 밥 먹자”는 말 자체도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 ‘대화하고 싶다’는 달콤한 말로 들려 기대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거다.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일본에선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는 일이 일상인데 한국에선 대부분 혼자 밥 먹기를 어색해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 여자들은 아예 혼자 식당에 안 간다.
일본의 유명한 라면가게 중 카운터 테이블에 한 자리씩 칸막이를 세우고 라면이 나오는 구멍만 앞에 보이도록 만든 곳이 있다. 오직 라면과 대화하며 라면 맛을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다. 장인정신을 자랑하는 일본다운 발상이다. 장인이 만든 예술작품을 잡념 없이 관상하며 ‘먹는 사람도 장인의 경지에 도달하라’는 의도인지…. 참 재밌는 시도 같다.
그에 비해 특히 한국 엄마들은 혼자 맛있는 걸 먹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한국의 옛말에 ‘콩 하나만 있어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눔의 정신이 한국 문화의 기본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밥을 시키고 밥값을 계산할 때도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선 식사를 제안한 사람이 메뉴도 고르고 계산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본은 식당에 여러 명이 같이 들어가도 각자의 취향에 맞게 따로 메뉴를 선택하고 밥값을 각자 내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 사람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해 대접해 주는 줄 알고 따라가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런 차이점이 있어 나는 한국에서 일본인 후배를 만나면 한국 풍습을 알려주기 위해 밥을 사주면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에선 보통 나이가 많은 사람이 밥값을 계산한다”고 가르쳐준다. 일본인 친구라면 “오늘은 일본 스타일로 각자 내자”고 할 때도 있고, 기분이 좋으면 “한국 스타일로 내가 밥 사준다”고 말할 때도 있다.
한국 풍습을 몰랐을 때는 실수도 있었다. 아주 오래전 천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일본어를 잘하는 한국인 남학생 두 명을 만나 내 일본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간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랑 같이 먹으려고 호두과자를 사주었다. 재미있게 대화를 이어가다 때마침 각종 식음료를 파는 카트가 지나갔다. 나를 포함한 일본인 3명은 카트로 달려가 각자 취향에 맞게 음료수를 사왔다.
나는 ‘한국인 두 명은 취향을 모르니 각자 알아서 살 것’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것은 사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학생들은 한국어로 “자기들 것만 샀네, 일본인들은 이기주의라잖아” 하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그때 일본인 3명 중 유일하게 한국어를 알아들었던 나는 얼굴에서 불이 날 정도로 창피했다. 그때까진 한국 풍습을 잘 모르고 있어서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것까지 다 챙겨야 하는 걸 몰랐었다. 나는 그날 표시 안 나게 갖고 있던 과자를 나누어주면서 그 상황을 조금이나마 만회했다. 그 사건은 내겐 큰 문화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다양한 ‘생활 문화’를 배우고 있지만 지금도 납득이 안 가는 점도 물론 많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물론 동일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같은 메뉴를 주문하면 빨리 나온다는 점, 똑같이 시간 맞춰 먹을 수 있다는 점, 가게도 한 가지 메뉴를 만들기가 편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까?
똑같은 음식을 같이 먹을 때 동질감을 많이 느껴서 그러는 건지 아직 도를 덜 닦아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을 고치기가 참 어렵다. 항목에 따라 자기 취향을 고집하는 것과 어울림을 위해 자기 취향을 희생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한국의 아름다운 ‘나눔의 정신’이 뼛속 깊이 들어가면 나도 언젠가 자랑스러운 한국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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