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 씨는 경기 양평에 귀틀집을 짓고 산다. 2002년에 지었으니 벌써 15년째다. ‘사람 위에 사람이 사는’ 아파트를 내 집이라고 살 수는 없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나와 내 가족이 어떤 집에서 살까를 고민하고 찾던 그녀가 만나게 된 집이 귀틀집이었다.
예부터 이 땅에서 지어온 한옥의 한 유형이고, 흙과 나무를 사용해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살기에 쾌적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은경 씨가 생각하는 집의 철학에도 잘 들어맞았다.
살아보니 한겨울에도 외풍이 없고 따뜻하며, 한여름도 더운 줄 모르겠다. 그러니 난방비도 적게 들고 에어컨은 달지도 않았다. 또 나무와 흙만으로 지은 집이어서인지 외출했다가도 집에만 들어오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런 반면, 목재와 흙이 마르면서 틈이 생기거나 갈라지기도 하므로 2, 3년에 한 번씩은 흙을 메워주는 번거로움도 있다. 천연 자재를 누리기 위해 감수할 일이다 싶지만, 다음에는 관리하기에 만만하도록 20평(60m²) 정도로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귀틀집은 지름 20cm 정도 굵기의, 껍질만 벗긴 통나무를 눕혀 쌓아 네 귀퉁이 귀부분에서 엎을장 받을장으로 홈을 파 맞추어 주는 방법으로 틀을 구성해 짓는다. 이때 통나무의 뿌리 쪽과 가지 쪽, 즉 원구와 말구는 굵기가 다르므로 한 단씩 쌓을 때마다 원구와 말구의 방향을 바꾸어가며 쌓아야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은 황토로 메워준다.
개마고원, 울릉도, 봉화 등 주로 산간지방에서 이런 집을 많이 짓고 살았는데, 깊은 산속의 바람과 눈을 견디어 낼 만큼 구조가 견고하여 “가난한 사람이 이불 없이도 겨울을 날 수 있는 집”이라 했을 정도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귀틀집 형상의 집이 등장하고 있으니 그 역사는 매우 깊다.
흙과 나무를 사용해 지은 집에 사는 것은 어떤 좋은 점이 있는 것일까.
우선 흡습성이다. 흙과 나무는 외부가 습하면 흡수하였다가 건조해지면 방출하니 자연히 습도 조절이 된다. 또 재사용 재가공이 가능하다. 나무는 상한 부분만 도려내 잇거나 맞추어 재사용이 가능하고, 오래된 집에서 나온 흙을 새 흙과 섞어 사용하면 강도가 더 좋아진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게다가 황토는 축열 기능이 있어 따뜻함을 오랫동안 유지한다. 귀틀집이 따뜻한 이유다.
이런 흙과 목재의 성질을 잘 활용하면 에너지 절약은 물론이고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 건축 폐기물로 인한 환경파괴도 줄일 수 있다.
현대 건축물에서 불이 났을 때 사망 원인은 불보다는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다. 지난해 대형 병원과 대학 실험실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 사태에서는 환기시스템이 병균의 이동 통로가 되었다. 요즘은 습도를 조절하는 가습기에 사용한 살균제가 일으킨 어이없고 가슴 아픈 상황을 겪고 있다.
귀틀집은 꾸준히 지어지고 있다. 귀농인들의 살림집으로, 건강을 회복하려는 이들의 안식처로, 도시인들의 휴식을 감당하는 펜션으로 말이다.
토속적 매력과 더불어 재료가 주는 순수한 느낌,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 짓는 편안하고 건강한 집이라는 요소가 사람들이 흙과 나무로 집을 짓게 한다.
귀틀집을 짓는 것은 현대 건축의 문제점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의 적극적인 실천이다. 그러나 전원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흙과 나무가 상징하는 ‘편안하고 건강한 삶’은 누구나 원한다. 이럴 때 ‘기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최근 인공적인 환기시스템과 화학성분 사용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천연재료와 자연의 원리를 생활 속에서 이용하자고 한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현대의 기술은 흙과 나무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고, 자연의 원리를 집짓는 데 능동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환경 파괴를 줄이면서 인간이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기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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