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우환 씨 그림의 위작이라 알려진 압수품 13점을 진품 6점과 비교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진품에 쓴 안료에서 납 성분이 위조 의심작보다 2배 이상 많이 검출된 것이 특히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경찰이 조사한 작품은 모두 1977∼1979년에 제작한 것으로 표기됐다. 1970년대까지는 납을 주재료로 만든 물감이 유채화에 흔히 쓰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어린이 발달장애 등 물감과 페인트 속 납 성분의 유해성을 지적해 사용을 제한한 것이 그 무렵이다.
경찰은 상세한 데이터 공개를 거절했지만 시간에 따른 변색 양상이 뚜렷하다면 납 성분을 상당량 함유한 안료를 쓴 그림으로 봐야 한다. 김주삼 아트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 소장은 “납을 주재료로 한 ‘레드(lead·납) 화이트’ 유채 물감은 건조가 빠르고 피막이 견고해 금속성 질감을 표현하는 데 유리하지만 독성을 갖고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둡게 변색된다”고 말했다.
유해성이 알려진 뒤 레드 화이트와 비슷한 질감을 내고 독성이 적은 ‘티타늄 화이트’가 보급됐다. 그러나 미묘한 색감과 보존성 차이를 이유로 여전히 레드 화이트를 찾아 쓰는 작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채 물감으로 주로 작업한 화가가 납 중독에 시달린 사례는 허다하다. 미술사가들은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에 그려 넣은, 쭈그려 앉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납 중독 증상을 암시한다고 지적한다. 작업대에 드러누운 채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며 얼굴로 떨어지는 물감을 그대로 받아낸 미켈란젤로가 복통, 관절통 등 납 중독 증세를 호소했다는 것.
정신착란 증상을 보인 고야와 카라바조 역시 납 성분을 쓴 물감을 즐겨 사용했다. 카라바조의 유골을 분석 중인 이탈리아 피사대 인류학 팀은 “작가가 보인 걷잡을 수 없는 광기의 가장 큰 원인이 납 중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2013년에는 스페인 내과의사 훌리오 몬테스 산티아고가 “빈센트 반 고흐 역시 납 중독 증세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흐는 말년에 물감을 먹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1889년)의 오묘한 원형 빛무리가 납 중독으로 인한 시각장애의 흔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림에 쓰인 납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원종욱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유채 물감 속 납 성분에 대한 연구 사례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과 러시아에서 납 성분을 함유한 실내용 페인트의 유해성이 사회적 이슈가 된 사례와 비교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말라붙은 페인트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를 장기간 호흡기로 흡수한 어린이의 학습능력과 심폐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진 뒤 납 성분을 쓴 안료와 페인트의 유해성 논란은 해외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소화기보다는 호흡기를 통해 흡수된 납 성분이 인체에 독으로 작용하며 복통, 신경마비, 신장장애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원 교수는 “납 성분을 함유한 안료로 그린 벽화에 오래 접촉한 사람이 피해를 입은 사례는 있다. 작업실과 전시실에서 안료의 성분이 미치는 영향의 차이에 대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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