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3박자 여덟 마디로 된 화성 진행을 반복하면서(기타 코드가 똑같이 되풀이된다고 생각하면 한층 이해하기 쉬울까요?) 그 위에 얹는 선율을 바꿔 나갑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에 나오는 샤콘도 유명하지만, 이탈리아 바로크시대 작곡가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1663∼1745·사진)의 샤콘도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삶을 건 도전에 직면한 듯한, 비장한 악상이 큰 호소력을 갖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 비탈리의 샤콘이 실제로 그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심도 제기됩니다. 큰 이유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 스타일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바꿈이 문제가 됩니다. 후반부에 곡이 극적으로 고조되면서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처럼 조(調)가 자유롭게 바뀌는데, 한정된 규칙 아래 조가 움직이던 바로크 시대 음악 감상자들의 개념에서는 좋게 말해 ‘혁신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상한 음악’으로 들렸을 듯합니다.
게다가 이 곡이 비탈리의 것이라는 문헌적 증거도 분명치 않았습니다. 악보에 ‘토마소 비탈리노의 파트’라고 적혀 있는데, 그것이 ‘비탈리노’가 작곡한 곡이라는 뜻인지 모호할뿐더러, 그 ‘비탈리노’가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정 결과 이 악보는 비탈리 생전에 활동했던 사보가(寫譜家·악보를 깨끗하게 옮겨 적거나 정리하는 전문가) 야코프 린트너의 필적임이 확인됐습니다. 최소한 후대에 만들어져서 바로크시대 것으로 변조된 악보는 아닌 셈입니다. 비탈리는 린트너의 시대에 왕성하게 활동했으므로, 악보에 적힌 ‘비탈리노’가 그가 맞을 확률도 훨씬 높아졌습니다. 과연 비탈리는 낭만주의 시대의 기법을 미리 내다보고 실현한 선구자였을까요?
9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독주회에서는 독일 하노버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그가 타르티니 소나타 ‘악마의 트릴’ 등과 함께 비탈리의 샤콘을 연주합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진보적인’ 조바꿈을 느끼면서 들어보는 것도 감상에 한층 도움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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