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행을 바라면서 떠나지 말고 지키라는 경고를 준수하지 못했으니, 오늘날 임금이 피란을 다닌 것은 정말 위태로운 행동이었다.”
선조실록 26년(1593년) 1월 14일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고, 요동으로 망명하려고도 했다. 그러다 전세가 호전되자 선조는 도성을 버린 일을 합리화하는 말을 한다. 이 말을 기록한 사관은 선조의 행동을 비판하는 사론(史論)을 남겼다.
한국고전번역원 조선왕조실록번역팀은 실록 중 사관의 주관적인 의견, 즉 사론을 엮은 ‘사필(史筆)’을 최근 냈다.
실록에는 ‘사신(史臣) 왈(曰)’처럼 ‘사신은 말한다’로 시작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이것이 사론이다. 조선 전기 실록에만 3400여 건이 실려 있는데 인물평이 약 57%이고, 임금과 신료의 잘잘못, 사건, 제도, 재이(災異) 등을 평가했다. 당대의 생생한 논평이어서 의미가 크다. 당대에는 임금을 포함해 누구도 함부로 실록과 사초(史草)를 열람할 수 없도록 했던 덕에 사관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필(直筆)을 남겼다.
왕실, 신하, 사건, 제도 등으로 나눠 사론을 소개한 1부와 사관의 업무를 다룬 2부로 구성됐다. 396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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