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게임에)나오는 사람이 좀비가 되기 전에 나를 죽여 달라고 ‘킬 미 나우(Kill Me Now)’라고 하잖아. 죽여, 죽이라고!”
지체장애자 조이와 그의 친구 라우디가 좀비를 죽이는 컴퓨터 게임 ‘킬 미 나우’를 하며 라우디가 내뱉는 대사이다. ‘나를 죽여 달라’는 뜻인 이 연극의 제목이기도 하다. 연극 ‘킬 미 나우’는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가 쓴 작품으로 오경택 연출과 지이선 작가의 힘으로 한국에서 처음 공연되고 있다.
아내와 사별하고 15년 간 아들 조이를 혼자 키운 제이크는 나이가 들어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아들 때문에 고민이 쌓인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아들은 더 이상 떼를 쓰는 아이가 아니다. 제이크의 가장 큰 고민은 스스로 성욕을 해결하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하는 지다. 여동생 트와일라와 이야기를 나누며 제이크는 조이의 자위행위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크는 느닷없이 온 몸의 신경이 점점 마비가 되고 몸이 굳어지는 병을 얻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돌봤던 아들 조이에게 이제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돼버린 아버지가 됐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제이크는 연인 로빈에게 아들이 하던 게임 ‘킬 미 나우’를 언급하며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다”고 목숨을 끊고 싶다고 한다. 그 말을 엿들은 조이는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130분간 연극을 보며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는다. 살면서 내겐 오지 않을 것 같은, 닥치지 않았으면 하는, 부딪히기가 꺼려지는 문제가 무대에서 고스란히 펼쳐지면서 관객에게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관객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현실임을 깨닫게 한다. 극을 보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체장애인 아들의 자위행위를 돕는 아버지, 존엄사 등 문제적 소재를 대범하게 다뤘지만 전혀 보기에 불편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는 지이선 작가의 각색의 힘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변한 것이 없지만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춰 적정선을 유지했고 원작에선 비중이 없었던 ‘라우디’캐릭터에 조금 힘을 실어 무거운 소재를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보이도록 조절했다.
출연 배우 모두 출중한 연기를 펼친다. 누구보다 가수 출신 배우 오종혁의 기량이 눈에 띈다. 지체장애자 조이 역을 맡은 오종혁은 130분 내내 휠체어에 앉아 몸을 뒤틀고 고개를 까딱거리는 몸짓을 하며 열연을 펼친다. 특히 욕조에서 죽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오열을 하는 오종혁은 커튼콜 때까지 그 감정을 연결해 관객들의 손수건을 적시게 한다. 제이크 역을 맡은 배수빈도 병을 얻으며 점점 악화되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잘 담아낸다. 배수빈과 오종혁의 부자 간 연기 호흡은 극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또한 동생 트와일리 역에 이진희, 로빈 역에 이지현 그리고 라우디 역에 문성일 역시 각자의 스토리를 잘 이끄는 동시에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 7월 3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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