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디자인 스튜디오 헤러틱(Heretic)이 책 본문 내용에 따라 작업해 삽입한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하우스 제공
저자는 45세의 독일인 예술전문 저술가다. 책은 A(Abstract Expressionism·추상표현주의)부터 Z(Zayas·풍자만화가 자야스 형제)까지,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1887∼1968)에 대한 이해를 한 모금씩 더해줄 화두를 묶었다. 뒤샹을 둘러싼 단어, 용어, 인물과 작품명이 품은 의미가 한 권의 새로운 사전처럼 차례대로 기술됐다.
뒤샹은 1967년 출판한 작품 ‘부정법(흰색 상자)’에 포함시킨 노트에서 “사전을 훑어보고 ‘원치 않는 단어’를 모두 삭제하라. 어쩌면 몇몇 단어를 더할 수도 있을 거다. 때로는 삭제된 단어를 다른 단어로 교체하라”고 권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뒤샹에 대한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휘를 배제하면서, 사실에 입각해 그와 그의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25세 때의 뒤샹에 대해 “예술과 대중을 화해시킬 인물”이라고 평했다. 1917년 미국 뉴욕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가명으로 출품해 거절당한 남성용 소변기 ‘샘’ 외에, 뒤샹에 대해 대중이 아는 건 뭘까. 그가 선호했던 텍스트 형식을 빌린 이 책은 “침묵과 고독을 소중히 여긴, 진지한 지적 의도를 지닌 장난꾸러기 예술가”의 이미지 윤곽을 쫓은, 유려한 동시에 유효한 조각퍼즐이다.
‘F’장에 실린 ‘4차원(Fourth Dimension)’ 항은 “시각적 즐거움보다 뇌 회백질을 사로잡길 원해 에로티시즘에 중요한 역할을 맡긴” 뒤샹을 이야기한다. 그가 무엇을 “탁월한 4차원의 상황”에 비유했는지, 책을 통해 확인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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