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부산에서 열린 국제모터쇼가 내건 주제 문구다. 국내외 자동차 및 부품업체들이 한데 모여 신상품을 선보이고 신기술을 자랑하는 자리였다. ‘자동차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이 행사에서 생산자들은 사업에 새 활로를 찾고, 소비자들은 생활에 새 활력을 얻고자 했다. 자동차의 시대가 한국에서 한 세기에 접어들고 있다.
‘보다 좋고, 보다 크게.’
이 자동차 광고 문안은 요즘이 아니고 88년 전의 것이다.
‘뉴 시보레의 사륜제동기가 승객에게 주는 완전한 안심, 강력발동기의 원활한 작동.’(동아일보 1928년 8월 26일자)
시보레 승용차의 1928년식 신형 모델의 출시를 알리는 신문광고의 헤드카피다.
‘택시계를 풍미하는 신 시보레호.’
택시용으로도 인기 있던 시보레 연작의 성가를 의식했음인지 전·후륜 모두에 적용되는 브레이크 시스템과 파워풀한 엔진을 앞세워 프로운전자와 택시회사의 구미를 돋운다. 서울에 운전사는 새로 출현한 인기 직종이었다. 그래서인지 자동차와 부품 광고는 무엇보다 기능 설명에 주력했고, 지금 못지않게 세밀하고 구체적이었다.
‘순정 포드 배터리는 신뢰할 수 있고 품질이 우량할 뿐 아니라 사용하시기에 매우 경제적입니다. 포드 차는 꼭 이것을 사용하십시오.’(동아일보 1926년 6월 23일자)
신문 광고는 자동차 부품을 자동차만큼이나 크게 선전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우량한 품질을―신 시보레 세단. 일본 제너럴모터스.’
이런 유의 자동차 광고 문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 노출되었다. 자동차와 거기 탑승한 서양인 남녀의 미려한 그림과 더불어. 낯설게 다가온 그 신세계의 광경이 생활에 젖어들어 어느새 친숙하게 변모하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보기 힘든 자동차 사고도 신문에 실렸다. 술에 취해 길을 가던 노인이 익숙지 않은 자동차의 경적 소리에 갈팡질팡하다 질주하는 차에 치이고 만다. 자동차 안에 든 승객은 무사하고 운전사는 경찰서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1920년 7월 27일 초저녁 의주에서 신의주로 향하는 길에서의 일이다.
예전 같으면 노인은 익숙한 길을 마저 걸어 귀가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를 그렇게 들이받을 흉물은 일찍이 없었다. 만에 하나 소달구지 같은 것에 부딪혔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세상을 등지는 지경에 이를 리 없다. 운전사 역시 그처럼 끔찍한 가해 경험을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자동차는 편리와 위험, 쾌감과 공포를 동시에 선사하는 신문물이었다. 이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신문은 해외 자동차 경주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5백 마일의 장거리를 5시간 40분의 짧은 시간에 상쾌하게 돌파하고 우승하였다. 시속 80마일이 넘는 그 속력은 자동차가 발명된 이래 처음 거두는 신기록이다.’
이 놀라운 소식을 듣기 두 달 전, 한국의 독자들은 자동차의 길지 않은 역사를 신문에서 알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열차 기관수 출신 미국인 헨리 포드 씨는 값싸고 사용하기 쉽고 수리하기 쉬운 자동차를 발명하여 자기 이름으로 자동차의 이름을 지었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자동차의 3분의 1은 포드 자동차이며 조선에서 사용하는 자동차도 이것이 제일 많다. 석탄이 아니라 석유나 휘발유를 태운다.’
당시 서울의 운전 열기를 전하는 기사도 실렸다.
‘요사이 자동차의 수효가 날로 늘어 경성에만 이미 2백 대에 가까워졌다. 자연 운전수의 수요도 많아져서 운전수를 양성하는 곳도 생겼다. 자동차강습소의 다수 졸업생은 각처에 취직하는데, 강습소는 지원자를 모두 받지 못할 정도로 넘쳐난다.’(동아일보 1920년 4월 24일자)
그로부터 근 한 세기 만에 자동차도 운전자도 공기처럼 흔한 일상이 되었다. 범국민적 질주 속에 뿜어내는 독가스는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게 할 정도로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물을 사서 마시는 운명이 될 줄 꿈에도 몰랐듯 미래의 공기도 어찌될지 불투명하다. 한국보다 몇십 배의 가스배출 능력을 지닌 중국에 이웃한 나라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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