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벽면 수납대에 김치냉장고용 플라스틱 통 6개가 쌓여 있다. 꺼내 열어준 통 속을 들여다보니 촉촉한 흙 위에 새까만 사슴벌레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가 슬쩍, 다리 하나를 움직였다.
그 옆에 놓인 작은 통 3개에는 물기를 살짝 머금은 스펀지와 스티로폼을 채워놓았다. 뚜껑을 여니 숟가락으로 떠내듯 둥그렇게 파낸 복판 홈에 누워 있던 황백색 사슴벌레 고치가 꿈틀, 자세를 바꿔 눕는다.
‘으아, 뭐야 이 사람.’ 》
이틀 전 찾아간 전시실의 인상도 비슷했다. 8월 6일까지 서울 서초구 페리지 갤러리에서 여는 이 씨의 개인전 ‘모두 다 흥미로운’ 전시실에 설치된 작품은 ‘돌’이다. 형태나 색채를 가공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조각난 돌덩이 수십 개를 죽 늘어놓았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이 씨는 홍익대 회화과 재학 시절부터 붓을 거의 잡지 않고 자그마한 조형물 작업에 몰두했다. 사슴벌레 고치 주름보다 촘촘하게 세공(細工)한, 어른 집게손가락 정도 크기의 나체 남성 점토인형이 지난해까지 그의 작품 대부분에 등장했다.
작업실에서 만난 이 씨는 “나 역시 전시 준비를 마치고 나서 ‘1년 넘도록 도대체 뭘 한 걸까’ 잠깐 멍하니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 때마다 제법 긴 시간 웅크리고 앉아 수공 작업에 매달렸는데 이번에는 그런 익숙한 과정이 없다 보니 허전했다. 예전과 이어진 작업이 아니다. 배경에서 구체적 서사를 없앤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그저 자연 상태의 돌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 화려한 색채를 한데 끌어모아 보고 싶었다.”
아무 정보 없이 전시실을 둘러보면 작가가 돌 위에 어떤 재료로 화사한 색을 입혔을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의 화려한 돌 색깔에는 어떤 가공도 없었다. 일부에 레진, 나무, 철사 등으로 부속물을 덧입혔을 뿐이다. 돌은 지난해 초부터 해외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구매했다. 선정 기준은 오로지 색깔. 미국, 멕시코, 페루, 호주, 불가리아, 중국, 인도네시아 등 15개 나라의 돌이 모였다. 가격은 1만∼40만 원으로 천차만별이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는 ‘지구 표면의 돌이 인체의 피부와 유사하다’는 데 착안해 기존의 누드 인형 작품과 이번 작업의 연결점을 찾았다.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모은 수석(壽石)에 관심이 많았다. 수석에 인형을 붙인 작품도 만들어봤다. 취미도 작업도 모두 내가 관심과 시간을 쏟는 대상으로부터 파생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중 문득 한구석에서 낭랑한 새소리가 울렸다. 금붕어가 가득한 커다란 어항 곁에 놓인 새장 속 십자매 울음이다. “어렸을 때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 동물 기르는 욕구를 어른이 돼 채우고 있다”는 그는 4년 전 새장을 재료로 한 설치 작품도 선보였다. 곤충 기르기는 5년 전 친구에게 권유받은 취미다.
“작고 경쾌한 사물에서 매력을 느낀다. 인터넷으로 돌을 사 모은 과정은 작품을 위한 과정인 동시에 내 욕구의 발로였다. 이우환 씨가 어떤 생각으로 돌 오브제 작업을 하는 걸까 생각도 해봤다.”
‘이게 뭐야’ 또는 ‘흥미롭다’로 반응이 크게 갈릴 전시다. 독립적 근경과 전혀 다른 원경을 가진 병풍 산수화를 닮았다는 인상을 전하자 이 씨가 덤덤히 말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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