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과 SNS엔 현미에 독성이 포함돼 있어 오랫동안 먹으면 사망에까지 이른다는 괴담이 떠돌고 있다. 현미식을 먹으며 건강식이라고 뿌듯해했던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이 소문은 과연 진실일까.
일찍 찾아온 더위에 기운이 달리고 식욕도 떨어지는 계절이다. 이럴 땐 입맛 돋우는 나물 반찬이 제격이다. 밥도 흰쌀밥보다는 보리밥이나, 현미가 듬뿍 든 잡곡밥이 낫다. 현미밥에 고추장 한 숟갈을 넣고 참기름 똑 떨어뜨려 쓱쓱 비벼 먹는 건 또 어떤가. 맛도 맛이지만, 다이어트에도 좋단다. 그래서인지 요즘 현미의 인기가 대단하다. 마트에는 분도 수(현미를 도정한 비율, 분도가 올라갈수록 백미에 가깝다) 별로 현미가 진열돼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과 SNS에는 이런 현미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 충격적인 괴담이 떠돌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 우리 조상들은 현미를 절대 먹지 않았다. 현미에는 독성이 있어 유기농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를 제초제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쌀겨 농법이다. 또한 현미를 오래 먹으면 치아가 삭고, 몸이 여위며, 빈혈·골다공증·간염·아토피 같은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심지어 다이어트를 위해 현미를 9개월 동안 먹었던 한 여성은 괴혈병과 영양 결핍으로 목숨을 잃었다.’
건강식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정성껏 현미 밥상을 차려냈던 주부들을 배신감에 휩싸이게 한 이런 소문은 과연 사실일까? 현미는 우리 몸에 독일까, 약일까? 현미를 계속 먹어도 될까? 괴담이 사실인지 아닌지 하나씩 풀어보기로 했다. 괴담 1_우리 선조들은 현미의 부작용을 알고 예부터 먹지 않았다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우선 괴담의 최초 작성자를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작성자가 만약 ‘이 바닥에서’ 문외한이라면 더 이상의 괴담 증명은 무의미할 것이므로.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괴담 작성자는 스스로를 ‘약초 전문가’로 소개한 최진규 씨였다. 그는 현미의 독성을 경고하며, “당장 드러나는 것보다 천천히 몸에 쌓여가는 독이 무섭다. 어릴 때부터 독이 쌓여 50~60대에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무조건 현미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뚱뚱한 분들에겐 체중 감량의 효과가 있고 당 수치를 떨어뜨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현미는 영양소 흡수를 심각하게 방해합니다. 특히 뼈와 신장, 뇌 기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미네랄의 흡수를 막기 때문에 건강 음식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현미 때문에 건강을 잃은 사람이 있을까. 몇 주간 수소문한 결과 한 남성을 만날 수 있었다. 평범한 50대 남성인 그는 5년 전부터 수차례 100% 현미식을 시도했다 포기하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처음 현미식을 시작했을 땐 몇 주간 몸도 가벼워지고 컨디션도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해지고 체중도 계속 줄었으며 급기야 어금니를 포함한 치아 5개가 흔들리다 빠졌다고 한다. 현미식을 중단하자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남성은 현미 괴담을 접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의 경험담은 현미 괴담에서 언급된 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다시 첫 번째 괴담으로 돌아가보자. 우리 조상들이 현미를 먹지 않았다는 괴담은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벼농사의 시작은 3천 년 전 청동기시대부터지만 도정이 시작된 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며, 그 형태도 백미보다는 현미에 가까운 불완전한 도정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와서야 지금과 같은 최신 기계 도정이 가능했으니 선조들은 자연히 현미 상태의 쌀을 먹었던 것이다. 괴담 2_강한 독성 때문에 현미 껍질이 제초제로 사용된다
괴담에서 언급된 것처럼 실제로 벼를 제외한 잡초를 억제하기 위해 쌀겨를 이용하는 농법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각론으로 들어가자 핵심적인 부분이 괴담과 달랐다. 농업기술원의 이순계 작물연구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현미에 아브시스산이란 성분이 있는데, 이 성분으로 쌀겨가 일종의 피막을 형성해 태양광을 차단합니다. 이런 원리로 태양광에 의해 발아되는 잡초 종자의 발생이 억제되는 것이지 현미의 독성 때문에 잡초가 죽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괴담 역시 사실과 달랐던 것. 그렇다면 괴담 속 등장하는, 9개월간 현미를 먹다 사망에 이르렀다는 그 여성은 어찌 된 일일까. 괴담에 따르면 그 여성은 마크로비오틱의 대부인 조지 오사와의 현미식을 실행하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국내 마크로비오틱 전문가인 이양지 연구가를 찾아가 그 여성이 먹었다는 조지 오사와의 현미 식단을 재현해봤다.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이란 그리스어로 ‘크다’라는 마크로(macro)와 ‘생명’이라는 비오틱(biotic)의 합성어로, 식재료를 뿌리부터 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것을 말한다.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섭취해야 식품이 가진 고유 에너지를 고스란히 섭취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탄생했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현미를 가장 중요한 식재료로 여긴다. 이양지 연구가가 차려준 조지 오사와 박사의 현미 식단은 현미밥에 제철 냉이 된장국, 표고전에 김치가 전부인 소박한 집밥에 가까웠다. 이걸 먹고 사망에 이르렀다는 괴담은 사실이라고 믿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마크로비오틱으로 다이어트식이나 환자식을 하더라도 극단적인 방법을 무리하게 강요하지는 않거든요. 정말 자연 그대로 일상에서 먹는 음식과 식단을 차려 먹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건강을 해친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괴담 3 현미에 포함돼 있는 피틴산이 체내의 영양소 흡수를 방해한다
피틴산은 쌀 껍데기에 실재하는 성분으로, 콩류, 나무 열매, 곡류의 외피에 많이 분포돼 있는 물질이다. 2013년 발표된 〈김치로부터 피테이트 분해 유산균 선별 및 현미에서 반응특성〉이란 논문에 따르면 ‘피틴산이 칼슘, 마그네슘, 철과 같은 무기질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는 것이 영양학적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또 2012년에 발표된 〈β-propeller phytase에 의한 골다공증 예방/치료 효능 규명〉이란 의학 논문에선 “동물 실험 결과, 곡물에 다량 함유된 피틴산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우리가 현미를 먹었을 때 피틴산 성분은 체내에서 칼슘, 철, 마그네슘 같은 무기질들과 결합을 하게 되는데, 이 상태로 우리 몸에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현미와 백미의 피틴산 차이는 얼마나 될지, 또 배출되는 무기질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보다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쥐에게 분도별로 도정된 쌀을 먹인 후 배설물을 분석해 배출된 무기질의 양을 비교해 봤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칼슘의 손실량을 비교해보니 현미에 가까울수록 체내에 흡수되지 못하고 배출되는 양이 증가했고, 인의 경우는 백미와 현미의 배출량이 1.5배나 차이가 났다. 마그네슘도 백미보단 현미에 가까울수록 배출량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칼슘 섭취량은 전 연령에 걸쳐 권장량보다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특히나 성장기인 10대 청소년층과 65세 이상 노년층의 경우엔 권장량에 비해 50% 정도만을 섭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권오란 교수는 현미 섭취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칼슘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분이나, 노인분들, 환자분들은 현미 섭취로 인한 칼슘 배출을 우려해야 합니다. 현미식을 할 것이라면 칼슘제를 보충해서 드시고, 마그네슘이 많이 들어 있는 해조류 식품도 매일 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 ·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 사진 제공 · 채널A | 디자인 · 유내경 글 · 김진 채널A 〈먹거리X파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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