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지금은 떠나보낸 첫 차를 그려본다.

  • 여성동아
  • 입력 2016년 6월 15일 11시 29분




1
기아자동차 모닝

조명옥(닛산 홍보대행사 대리)
대학 시절 통학용으로 중고 모닝을 구매했다. 이젠 너무 오래전 일이라 연식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대형 트럭이 옆을 지나갈 땐 무서워 휘청거리고, 친구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가는 고갯길엔 힘에 겨워 ‘크와아아’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모닝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 사랑스럽고 유용한 존재였다. 졸업으로 더 이상 필요 없게 돼 헐값에 넘길 땐 가슴이 따가웠다. 또 다른 젊은 새내기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본 게 우리의 마지막이다. 나와의 대학 시절을 간직하고 있을 모닝이 지금도 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2 대우자동차 마티즈 1999년 식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IMF 구제금융 시기에 차가 너무 갖고 싶어 무리인 줄 알면서도 할부로 첫 차를 샀다. 그런데 첫 할부금을 내기도 전에 졸음운전 사고가 났다. 수리 견적이 차 값의 절반이 넘었다. 폐차도 할 수 없단다. 한 달 넘는 수리 끝에 돌려받은 차는 관절이 안 좋은 듯 휘청거렸고, 비오는 날 고인 물을 지날 땐 실내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차도 나도 골병이 들었지만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내며 정도 참 많이 들었다. 6년 동안 잘 타고 팔 땐 눈물이 다 났다.
3 현대자동차 EF 소나타 1999년 식

이정협(현대기아자동차 홍보팀)
대학 시절 어머니가 새 차를 구매하면서 타던 차를 물려받았다. 소나타와 운율을 맞춰 ‘나타샤’라는 애정 어린 이름을 지어줬다. 당시엔 차를 가지고 통학하는 학생이 흔치 않아서 자취하는 친구들 이사를 도와주고, 5인승 차임에도 불구하고 6명이서 힘들게 끼어 앉아 여대 축제에 놀러가곤 했다. 청춘을 함께 달린 셈이다.
4 르노삼성 SM5 노바 2015년 식

신무경(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장롱면허 탓에 항상 미숙한 운전에 시달리던 내가 그녀를 만나고 처음 3박 4일을 달리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사랑에 빠질까 지레 겁먹은 난 홍보팀의 중매로 연을 맺기 전
“사고 쳐도 출혈이 덜한 적당한 차로 부탁한다”고 밑밥을 깔아뒀었다. 첫 만남에 덥석 그녀의 손(핸들)을 잡고 말았지만. 시승 마지막 날이던 3일 차 나는 기어코 그녀에게 진한 키스를 남겼다. 50cm 길이의 기스(Kizu) 말이다.


5 현대자동차 포니 엑셀 1985년 식

임유신(자동차 칼럼니스트)
1990년대 초반 대학생이 된 후 내 차를 살 꿈에 부풀었다. 마침 차를 바꾼 이모부가 10년이 다 돼가는 포니 엑셀을 ‘공짜’로 주셨다. 1년 동안 대학 동기들과 틈만 나면 이 차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놀러 다녔다. 짧고 뜨거운 만남은 쉽게 식는다고, 낡은 차라 그런지 1년이 지나자 슬슬 지겨워졌다. 이모부의 기부 정신을 이어받아 한 다리 거쳐 아는 사람에게 거저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인수받기로 한 사람이 시동을 거는 순간 흰 연기를 쿨럭쿨럭 토해냈다. 하필이면 이때…. 졸지에 고장 난 차를 사전 고지 없이 떠넘긴 ‘못된 놈’이 됐다.

6 기아자동차 비스토 1999년 식

김기범(로드테스트 편집장)
나의 첫 차는 큼직한 눈망울을 가진 검정색 비스토다. 덩치가 아담해 이곳저곳 다니기 딱 좋았다. 게다가 경차 세계에선 흔치 않은 풀옵션이었다. 듀얼 에어백과 ABS는 물론 CD플레이어까지 갖췄다. 그러나 성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3단 자동변속기여서 시속 40㎞ 이상에선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가속이 느려 양보가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해피엔딩이었다. 빠듯한 힘을 효율적으로 쓰고, 허술한 몸놀림을 보듬는 습관이 들면서 역설적으로 운전 실력 키우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으니까.
7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5도어 1993년 식

장진택(〈카미디어〉 기자이자 채널A 〈카톡쇼〉 진행자)
저녁 8시, 수은등이 켜진 한강 둔치에서 이 차를 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를 받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주차장에 있어야 할 짙은 회색 프라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차 번호도 기억나지 않았다. 주차장에 있는 모든 프라이드에 키를 꽂았더니 난생처음 보는 ‘파란색’ 프라이드의 문이 열렸다. 프라이드에 이런 색도 있었나? 수은등에 비친 모습만 보고 그만 짙은 회색으로 착각했던 거다. 나는 이 특별한 프라이드를 3년이나 타고 다녔다. 색이 워낙 튀어서 양다리 걸칠 생각도 못 했다. 누이를 태우고 테헤란로를 달리다 ‘간당간당하던’ 애인으로부터 ‘이별 문자’를 받은 적도 있다.
8 쌍용자동차 코란도

성현재(한국타이어 홍보팀)
남자다운 자동차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샀다. 그런데 코란도의 단점은 앞이 무겁고 뒤가 가볍다는 점이다. 빨리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팽이처럼 빙글빙글 돈다. 여러 번 죽을 뻔했지만, 워낙 튼튼해서 차만 다치고 난 다치지 않았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난 뒤 트렁크에 20킬로그램짜리 쌀 포대를 3개씩 넣고 다녔다. 그 이후로 차가 도는 일은 없었다.
9 폭스바겐 골프 2.0 TDI

김민주(폭스바겐코리아 PR 매니저)
첫 차를 고르는 것은 가슴 설레는 경험이다. 결혼 후에야 온전한 내 차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골프는 남편처럼 성실하고 겸손하다. 첫째와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새 네 명의 가족이 될 때까지 모든 추억을 함께했다. 트렁크 가득 짐을 실어도 한 번의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동반자가 돼줬다.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나의 질주 본능까지 만족시켜준 멋진 친구다. 사정상 지금은 아쉽게 헤어졌지만.

사진 · 김도균 | 사진제공 · 기아자동차(080-200-2000) 르노삼성(080-300-3000)
쌍용자동차(080-500-5582) 폭스바겐(080-767-0089) 한국지엠(080-3000-5000)
현대자동차(080-600-6000) | 디자인 · 김영화
기획 · 안미은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