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중국간 국경선을 이루며 서해로 흘러드는 압록강(鴨綠江)이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압록수(鴨綠水)가 아니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정식으로 제기됐다.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리는 ‘고대 평양 위치 탐색 관련 학술회의(인하대 고조선연구소 평양연구팀 주관)’에서 강원대 남의현 교수가 ‘고대의 압록수와 압록강은 현재의 압록강이 아니다’는 주제로 발표하는 논문에서다.
남 교수는 “사료에 등장하는 압록강은 ‘고려에서 가장 큰 강’, ‘너비가 300보(400m~500m)’, ‘큰 배로 건너다니며 천연의 요새로 삼는다’, ‘천하에 세 강이 있으니 황하, 장강, 압록강이다’ 등으로 표현돼 있다. 이런 기록들은 현재의 북한 경계인 압록강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압록강은 고대 문헌이 묘사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는 것. 남 교수에 따르면 북한쪽 압록강은 △강 길이가 800여km, 너비는 불과 200m 안쪽으로 중국의 황하(5400km)와 장강(6300km)에 비교할 수 없고 △고구려가 천연의 요새지로 삼을 만큼 규모가 크지 않으며 △유속이 빠르고 바닥이 낮아 하류에서 상류까지 큰 배가 다닐 수 있는 교통 요로가 아니며 △목재 등을 운반하는 배가 다닐 수 있는 기간도 1년 중 최대 6개월에 지나지 않으니 사료에 등장한 압록강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중국의 문헌과 여러 사료를 증거로 들어 중국 랴오닝성의 요하(遼河)가 압록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 요동과 요서를 가르는 요하는 그 길이가 1400km로 남만주 지역을 관통하고 있으며, 여러 수계가 모여 발해로 들어가는 교통 요로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짐을 실은 배가 발해만에서 내륙으로 약 500km가 넘는 거리를 운항했다고 한다.
남만주의 젖줄 역할을 한 요하로 인해 일찌감치 이 일대에는 고대 도시들이 번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요하를 통해 요동을 방어하고 육상과 해로를 통해 군수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강 주변에 있는 라오양(遼陽), 선양(瀋陽) 등의 도시들이 고대 수도나 전략 거점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남 교수의 주장이다.
모두 10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이 날 학술대회에는 남 교수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다른 논문들도 눈에 띈다.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윤한택 교수는 신라의 뒤를 이어 등장한 고려의 북계(北界)는 중국 랴오닝성 중부지역까지 이르렀으며, 고려 시대 내내 ‘요하’까지 자국 영역으로 인식해 왔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검증하는 논문을 발표한다. 또 경복대 이인철 교수는 문헌 연구와 현지 답사를 통해 고려의 윤관이 개척한 동북9성이 두만강 이남이 아니라,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벤(延邊) 지역과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동남부 지역에 위치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압록강이 요하로 밝혀질 경우 고려의 영토는 지금의 한반도보다 2배나 넓은 지역으로 확장된다. 또 압록강을 중심으로 고구려 평양성의 위치를 기록한 사료도 있어, 고구려의 평양이 현재 북한 수도인 평양이 아니었다는 학계 일각의 주장도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고려 시대 묘청의 서경(평양) 천도 주장과 조선 창업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현재 알려진 역사 상식과 상당히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사에서 고대 평양의 위치는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번 학술회의가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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