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 작가 마크 해던이 4년간의 침묵을 깨고 지난달 발표한 신작 ‘부두가 무너진다’가 독특한 주제와 뛰어난 문학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해던은 1987년 아동물 ‘길버트의 곱스토퍼’로 데뷔했고 ‘에이전트 제트(Z)’ 시리즈를 포함해 20여 편의 아동 및 청소년물을 썼다.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2003년 발표한 첫 성인물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다.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에 걸린 15세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렸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이를 원작으로 만든 연극도 사랑받았다. 해던은 이 작품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휘트브레드상(코스타상의 전신)을 받았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부두가…’는 해던의 첫 단편 소설집이다. 아홉 편의 단편은 죽음, 이별, 파괴, 폭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부두가…’는 1970년대 항구 도시 브라이턴의 부두가 갑자기 무너지며 시작된다. 교각의 나사 몇 개가 헐거워지면서 도미노처럼 교각이 차례로 무너지고, 부두 위에서 한가롭게 주말을 보내던 사람들은 아수라장에 빠진다. ‘교각이 무너진 지 5분 뒤, 사망자 10명’ ‘교각이 무너진 지 10분 뒤, 사망자 30명’ 등 뉴스처럼 상황이 묘사된다. 어린아이는 순식간에 부모를 잃고, 부모는 어린 딸을 찾아 헤맨다. 다리를 다친 노인은 그대로 파도에 휩쓸린다.
‘Wodwo’(‘The Wild Man’을 의미하는 말)는 어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모 집에 모인 세 명의 자녀와 각자의 배우자, 아들, 딸이 식사를 하려는데 방문객이 찾아온다.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첫째 아들 개빈은 무언가에 홀린 듯 총으로 방문객을 쏘아 버린다. 피투성이가 돼 죽던 방문객은 잠시 후 유유히 일어나더니 개빈에게 “일 년 뒤에는 내가 당신을 쏠 겁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난다. 그 후 개빈에게 비극이 닥친다. 잘나가는 방송 진행자였던 그가 어떻게 노숙인으로 몰락하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헤어지는 가족의 이야기가 담담히 펼쳐진다.
궁전에 갇혀 순진하게만 살아온 공주가 야만인의 침략으로 가족을 잃고, 자신마저 서서히 야만인으로 변해가는 ‘섬’이나 심한 비만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고 발가락이 썩어가는 남자 버니와 그를 살리기 위해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던 애인의 이야기인 ‘버니’ 등 어두운 상황을 다뤘다.
해던은 이 단편집으로 선데이타임스가 주관하는 EFG 프라이빗 뱅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인디펜던트와 가디언은 앞다퉈 뛰어난 문학성을 칭찬했다.
해던이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이나 가족의 해체에 대한 글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출간한 ‘소문난 하루’는 자신이 암으로 죽어간다고 착각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붕괴되는 모습을 그렸고 2012년 발표한 ‘빨간 집’은 가족 휴가 중 일어난 참사로 인해 우리 모두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그렸다.
‘부두가…’는 기존 작품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해던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해체와 외로움, 인간의 폭력성이 더 짙어진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읽으며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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