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1년(명종 6년) 1월 경북 성주군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조선 중기 문신 이문건은 남몰래 손자 이수봉의 탯줄을 태봉에 묻었다. 이곳에는 조선왕조 왕자들의 태를 묻는 태실(胎室)이 있었다. 왕실이 택한 곳인 만큼 풍수지리 명당이었다. 왕족이 아닌 사람이 감히 태실을 범했다간 귀향 등 중벌을 각오해야 했지만 사화에 휘말려 유배를 당하고 외아들까지 잃은 이문건에게 하나뿐인 손자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존재였다. 이문건은 후손의 번성을 간절히 기원하며 태를 묻었다.
조선왕조 태실의 역사적 연원과 가치를 조명한 ‘태실’(책읽는사람들)이 최근 출간됐다. 향토사학자이자 서삼릉태실연구소장인 김득환 씨가 지었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는 곳으로, 왕세자나 왕세손의 태는 특별히 석실에 보관했다. 예로부터 태는 사람의 생명력이 담긴 것으로 보아 귀중히 여겼고 왕실의 태는 국운과 관련된 것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왕실 차원에서 태실이 들어설 명당을 물색했고, 이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태실도감’을 따로 두었다. 태조 이성계부터 27대 임금 순종까지 조선 왕 대부분의 태실이 조성됐다. 이 책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태항아리의 문화재적 가치도 소개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