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뉴스를 보면 형제간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법정 소송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세상이 흉흉해졌음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인륜을 대단히 중대시했던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소송이 없지는 않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양할머니가 소유하였던 집과 땅을 아버지에게 넘겨주면서 그가 죽은 뒤에는 손자에게 이 재산을 전해 준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양할머니의 뜻과는 다르게 자식들에게 고루 재산을 나누어 주었고, 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아들이 아버지의 처사가 잘못되었음을 소송으로 문제 제기한 것이다.
왕의 친족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당시의 임금인 성종은 조정의 여러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 내용이 실록에까지 자세히 실리게 되었다. 왕의 가까운 친족이니 형편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꽤나 행세를 하였을 텐데, 예나 지금이나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섭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임금과 신하의 논의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켜 또다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였으나, 재산을 나눠 준 것이 오래전의 일이니 이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륜에 대한 문제로 따졌을 때에는 둘 다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자식들에게 고루 재산을 나눠 준 아버지의 잘못은 이치를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고,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잘못을 들추어 소송을 제기한 것은 큰 잘못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은 위와 같은 판결을 내려 아들을 벌하게 하였다.
법치국가에서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위하여 법의 판단을 구하는 행위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법에 의해 인간 본연의 마음과 질서가 파괴된다면 본말이 단단히 전도된 것이다. 가정과 사회의 질서 유지 방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의 질서 유지 방식인 법이 가정사에 간여하는 빈도가 자꾸만 늘어가고 있다. 가정에서조차 ‘우리’가 아닌 ‘나’를 더욱 강조하면서 나 이외에는 모두 남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가정이건 사회건 법 이전에 사람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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